1. 서 론
우리나라에는 13세기인 고려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사용한 인쇄 선진국이었다. 금속활자의 발명 이전에는 목판인쇄술이 사용되었고 금속활자의 발명 이후에도 목판인쇄는 20세기 초인 개화기까지도 지속되었다(Cheon, 1984; Cheon, 1988; Cheon, 1993a; Cheon, 1993b; Ok, 2013; Yoo andYoo, 2022).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직지(直指, Jikji)』 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 節)』이 2001년 9월 4일에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우리나라의 찬란했던 금속활자 인쇄술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권(下卷)만 전해지고 있으며 원본은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UNESCO, 2022). 근래에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인쇄된 고서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고서는 주로 서지학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감정을 거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늠하게 된다. 고서의 기본적인 정보로 인쇄시기와 방법을 판정하게 되는데 서지학 분야에서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아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Cheon, 1993a; Cheon, 1993b; Ok, 2013). 인쇄방법은 금속활자본, 목판 인쇄본, 금속활자의 목판 번각본(飜刻本), 목판본, 목활자본 등으로 구별한다.
고서의 인쇄시기는 책의 간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인쇄 시기를 기록한 간기(刊記)가 적혀 있는 경우에는 간기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활용하게 되고 간기가 없는 경우에는 인쇄에 사용된 종이, 인쇄상태, 고서의 내용, 문헌상의 기록 등을 참고하여 추정하게 된다. 인쇄방법의 판단은 인쇄된 글자의 위치, 줄, 모양, 획, 간격, 마멸, 칼자국, 너덜이(활자 주조시의 결함), 묵색(墨色), 반점, 번짐, 광곽(匡郭), 어미(魚尾)의 형태 등의 다양한 특징 등이 금속활자본과 번각본을 구별하는 데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판단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고 담당자의 자의적 판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연구자에 따라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Cho, 2015; Son, 2017; Choy, 2021). 조사 내용과 결과에 따라서는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방법에 의한 주관적 판단하에 고서를 정밀 촬영한 이미지처리를 통한 종이와 인쇄된 글자의 특징을 추출하고 정량화하여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는 방법으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 연구에서는 동일한 고서의 여러 가지 판본의 인쇄방법, 인쇄순서, 인쇄시기를 판단하기 위한 객관적인 기준을 판본 간의 이미지 비교분석을 진행하여 매우 의미있는 결과를 얻게 되어 소개한다.
2. 연구대상 및 연구방법
2.1. 연구대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여러 종류가 전해지고 있으나 고려 무신정권의 실력자인 진양공(晉陽公) 최이(崔怡)의 발문(跋文)이 적혀 있는 것은 여섯 가지 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 글자체까지 매우 유사한 것은 네 종류가 알려져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여섯 가지 판본의 이미지를 모아 판본 간의 이미지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여섯 가지 판본에 관하여 Table 1에 선행연구에서 추정된 인쇄순서에 따라 정리하였다(Yoo and Kim, 2021; Yoo, 2022a; Yoo, 2022b).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유래와 내용에 관해서는 많은 선행논문에서 소개하고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여섯 가지 판본 중에서 A: 공인본(空印本)과 D: 삼성본(三省本)은 2012년과 1984년에 각각 보물로 지정되었다. E: 종로도서관본(鍾路圖書館本)은 2021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A: 공인본(空印本)에 관해서는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과 금속활자본을 저본으로 번각한 목판으로 인쇄된 목판본이라는 주장이 50년 이상 대립하고 있다(Sohn, 1959; Sohn, 1971; Park, 1988; Cheon, 1984; Cheon, 1988; 1988; Cheon, 1993a; Cheon, 1993b; Ok, 2013; Cho, 2015; Son, 2017; Park, 2020a; Park, 2020b; Choy, 2021; Yoo and Kim; 2021; Yoo, 2022a; Yoo, 2022b). 여섯 가지 판본 중에서 간행연대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C: 대구본(大邱本)과 E: 종로도서관본(鍾路圖書館本)의 두 가지 판본으로 각각 1472년과 1526년에 인쇄되었다(Song and Jung, 2015; Yoo, 2022a; Yoo, 2022b).
여섯 가지 판본의 이미지는 소장자와 서지학자들이 고해상도로 촬영된 것과 소장 도서관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제공받아서 이미지의 배율이 동일하게 되도록 하여 비교분석 하였다. F: 국립중앙도서관본(國立中央圖書館本)은 스캔본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다섯 가지 판본은 사진 촬영된 것이다. 여섯 가지 판본의 첫 페이지의 이미지를 Figure 1에 정리하였다. B: 반야사본(般若寺本)은 제1장 전엽과 후엽(1페이지와 2페이지에 해당)이 없는 상태로 이미지를 실을 수 없었다. 제1장을 제외한 나머지 43장분은 모두 남아 있어 이미지의 비교분석에 큰 지장은 없다. 각 판본의 제4행의 12번째 글자인 意자를 흰색 사각형으로 표시해 놓은 것은 차후 각 판본의 행별 이미지를 사용하여 동일한 위치의 동일한 글자의 이미지 분석 사례로 사용하는 글자이므로 페이지 내에서의 위치를 미리 알려 두기 위함이다.
2.2.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는 여섯 가지 판본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같은 반곽(半郭)의 크기가 오차 1% 이내로 동일하도록 이미지의 크기를 조정하여 이미지의 비교와 분석에 사용하였다. 이미지의 배율은 각 판본 이미지의 가로세로의 비율을 고정하고 상하 광각의 폭이 일치하도록 축척을 조정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병합하여 분석에 사용하였다. 각 판본의 이미지 크기 조정 후의 이 이미지는 1화소(pixel)의 크기가 92 mm × 92 mm의 해상도에 해당하며 길1 mm는 10.8화소에 해당한다. 인쇄 시의 해상도는 274 dpi (dot per inch)에 해당한다. 페이지, 행, 글자별로 광곽(匡郭)과 글자의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였다. 각 판본에서 인쇄된 글자의 면적을 측정하여 정량적 분석자료로 활용하였다. 종이의 변색 또는 흑화 정도에 따라서 글자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각 판본의 종이의 색을 흰색으로 처리하여 인쇄된 글자의 윤곽과 영역을 정량화 하기 쉽게 가공하였으며 가공 전후의 이미지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미지 분석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근래에 문화재 분야에서도 많은 활용 사례가 소개되고 있는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PicMan, WaferMasters, Inc., Dublin, California, USA (Kim et al., 2019; Yoo, 2020; Yoo and Yoo, 2021; Yoo et al., 2021a; Yoo et al., 2021b; Yoo et al., 2021c; Chua et al., 2022))를 사용하여 진행하였다. 각 판본 이미지의 비교와 분석을 통하여 각 판본에서의 글자 모양의 변화를 가시화하고 글자 크기의 변화를 정량화하여 판본 간에 나타나는 변화의 경향성을 파악하였다.
이미지 비교 분석을 통해서 파악된 판본 간의 글자 인쇄면적 변화의 경향성과 인쇄시기와 방법이 정확하게 알려진 두 가지 판본의 정보를 바탕으로 선행연구에서 추정된 각 판본의 인쇄방법, 인쇄순서, 인쇄시기의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3. 금속활자본과 목판 번각본의 이미지 비교
3.1. 판본 간의 개별 글자 모양과 인쇄면적 비교
앞에서 Figure 1에 소개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첫 페이지의 제4행의 글자 중에서 12번째 글자인 意자의 모양과 인쇄면적의 차이를 이미지분석 소프트웨어 PicMan으로 가시화 및 정량화하는 작업화면을 Figure 2에 소개하였다. B: 반야사본은 첫 장이 낙장인 관계로 글자를 확인할 수 없으나 나머지 다섯 가지 판본의 경우에는 판본별로 글자의 모양에도 차이가 있으며 인쇄된 면적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A: 공인본의 인쇄면적은 3,636화소로 계산되나 C: 대구본에서는 면적이 4,963화소로 증가하고 D: 삼성본에서는 4,625화소로 대구본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A: 공인본과 D: 삼성본 사이에는 면적비로 약 27.2% 증가한 셈이다. 인쇄된 글자의 모양도 A: 공인본과 C: 대구본 및 D: 삼성본 사이에는 글자의 모양과 획의 두께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A: 공인본과 C: 대구본 및 D: 삼성본은 근본적으로 다른 판으로 인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목판을 번각하게 되면 판각을 위해서 뒤집어 붙인 판하본(板下本)을 바탕으로 판각하게 되는데 각수의 심리상태를 고려하면 판하본의 글씨의 안쪽으로 판각하는 것보다는 바깥쪽으로 판각하게 되어 번각본에서는 이전의 판본보다 획이 두꺼워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D: 삼성본에서 E: 종로도서관본으로 넘어가면서 각수의 실수로 글자가 바뀌게 되며 F: 국립중앙도서관본에서도 잘못 판각된 상태로 번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 종로도서관본과 F: 국립중앙도서관본이 동일한 목판으로 인쇄된 판본일 가능성에 관해서도 검토해보았으나 意자를 잘못 판각한 글자의 日과 心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E: 종로도서관본과 F: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서로 다른 판본이며 먹색은 옅지만 글자의 인쇄면적이 3,884화소에서 4,739화소로 약 22.0%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F: 국립중앙도서관본은 E: 종로도서관본을 저본(底本)으로 번각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C: 대구본과 E: 종로도서관본에는 최이의 발문 다음에 간행에 이르게 된 과정과 방법이 기록되어 있어 번각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 판본 중에서 글자의 획이 가장 가는 것이 가장 먼저 인쇄된 것이고 번각을 거듭하면서 글자의 획이 두꺼워져 글자도 커지고 인쇄면적도 넓어지게 되는 경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 종로도서관본과 F: 국립중앙도서관본의 잘못 판각된 意자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번각을 하는 경우에는 앞의 판본에서 결함이 있더라도 결함까지도 그대로 답습하여 판각하는 것이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판본의 이미지를 정밀하게 비교 분석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페이지별로 판식과 글자의 배열 내용만을 훑어보고 판단하게 되면 판본 간의 차이를 인지하기 어렵다. 이제까지는 이러한 이미지의 비교 분석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서지학자들의 눈썰미에 의존한 주관적인 판단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단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각 판본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비파괴적인 방법인 이미지비교 및 분석을 통하여 결론을 얻게 된다면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3.2. 판본 간의 행별 글자 모양과 인쇄면적 비교
특정한 글자에만 초점을 맞춰 분석하게 될 경우, 특별한 경우만을 골라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러한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글자를 추출하여 비교하는 방법도 있지만 무작위의 진실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여섯 가지 판본의 이미지가 확보 가능한 첫 페이지인 제3페이지(제2장 전엽에 해당)에서 글자가 가장 많이 인쇄된 첫번째 행인 제3행에 인쇄된 15글자(南朙禪師泉公昔居千頃復頌證道歌)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개별 글자의 모양과 인쇄된 글자의 면적의 판본 간의 차이를 가시화하고 정량화하였다. Figure 3에 여섯 가지 판본의 15글자의 이미지를 비교하고 인쇄된 글자만 남기고 종이의 색을 Threshold Switching 기능을 사용하여 흰색으로 처리하여 글자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도록 한 예를 정리하여 표시하였다. 앞의 예처럼 글자를 한 자씩 비교할 경우에는 글자 간의 작은 차이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행별로 비교하는 경우에는 육안으로는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특히 종이의 색상이 판본마다 다른 경우에는 글자와 종이의 명도 대비의 차이가 판본마다 매우 다르기 때문에 판단이 더욱 어려워진다. 페이지별로 비교를 하게 된다면 기억에 의존해서 판단해야 하므로 글자의 크기나 모양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여러 가지 판본을 육안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본 연구에서는 Figure 2의 해상도로 글자별로 인쇄면적을 계산하여 그 결과를 Table 2에 글자별, 판본별로 정리하였다. 일반적인 경향을 보면 A: 공인본부터 B: 반야사본, C: 대구본, D: 삼성본, E: 종로도서관본, F: 국립중앙도서관본의 순서로 인쇄면적이 단조롭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제3행 15자 전체의 인쇄면적을 기준으로 비교하더라도 A: 공인본에 비하여 B: 반야사본, C: 대구본, D: 삼성본, E: 종로도서관본, F: 국립중앙도서관본의 순서로 면적이 5.6%, 24.9%, 39.3%, 20.1%, 3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 종로도서관본과 F: 국립중앙도서관본의 경우에는 D: 삼성본에서 번각하면서 글자의 모양이 크게 변형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별로도 취급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번각에 따른 인쇄면적의 증가율을 보면 A: 공인본에서부터 D: 삼성본까지는 번각 단계별로 각각5.6%, 18.2%, 11.5% 증가하고, E: 종로도서관본에서 F: 국립중앙도서관본으로 번각할 때의 인쇄면적 증가율은 13.9%로 나타났다. 따라서 번각할 때마다 인쇄면적이 단조롭게 증가하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
Figure 4에 매우 유사한 판본인 A: 공인본, B: 반야사본, C: 대구본, D: 삼성본의 네 가지 판본에 인쇄된 南朙禪師泉公昔居千頃復頌證道歌 15자의 글자의 글자별 면적의 변화를 그래프로 표시하였다. 頌, 證 2자의 경우에는 B: 반야사본에서 인쇄상태가 고르지 못하여 인쇄면적이 축소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매번 번각을 하면서 글자의 획이 두꺼워져 인쇄면적이 넓어지는 경향이 확인된다. 마지막 글자인 歌의 경우에는 광곽에 가깝기 때문에 인쇄 시 종이를 문지르는 압력의 변동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南朙禪師泉公昔居千頃復頌證道歌 15자의 면적의 합을 여섯 가지 판본에 대하여 판본별로 비교하여 그래프로 표현하면 Figure 5와 같다. A: 공인본, B: 반야사본, C: 대구본, D: 삼성본의 네 가지 판본 간의 관계는 A: 공인본을 저본으로 하여 목판으로 번각을 지속한 것으로 판단된다. E: 종로도서관본과 F: 국립중앙도서관본의 경우에는 D: 삼성본보다 면적이 좁은 것은 새롭게 번각하면서 글자의 모양이 현저하게 변형된 결과이다. 아울러 E: 종로도서관본과 F: 국립중앙도서관본은 글자의 모양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인쇄면적이 13.9% 증가한 것은 F: 국립중앙도서관본이 E: 종로도서관본을 저본으로 번각이 이루어졌 음을 시사하고 있다.
3.3. 서지학자들의 주장의 모순
서지학자들은 A: 공인본은 종이의 질이나 인쇄상태로 판단할 때 D: 삼성본보다 한참 후대에 인쇄된 것으로 주장해왔다(Cheon, 1984; Cheon, 1988; Cheon, 1993b). 그 원인으로 든 것은 목판을 많이 사용하면서 마멸되어 획이 가늘어졌다는 주장으로 현재 대부분의 서지학자들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것이 A: 공인본이 번각된 목판으로 인쇄된 목판본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과연 목판이 마멸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Figure 6에 목판의 이미지와 목판의 단면을 도식화해 보았다. 목판에 글자를 판각할 경우, 목판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직각보다 각도가 큰 둔각으로 판각을 하기 때문에 목판이 마멸될 경우에는 글자의 획이 두꺼워지게 된다. 그러나 획은 전체적으로 두꺼워지지만 삐침과 같은 예각의 구성요소는 두루뭉실하게 무너지게 된다. Figure 2의 C: 대구본, D: 삼성본의 即, 言, 皆자에서 보이는 글자의 수려함은 목판을 새롭게 번각하면서 각수의 예술혼이 더해지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유리한 증거만을 골라서 제시하거나 현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논리를 개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올바르게 판단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3.4. 공인본에서만 나타나는 주물제작 결함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여섯 가지 판본의 이미지를 정밀하게 비교 분석한 결과 주물로 금속활자를 제작할 때 생긴 것으로 보이는 결함이 발견되는 판본은 A: 공인본이 유일하다. 금속활자의 주물 제작 시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결함(Park, 1988; Park, 2020a; Park, 2020b)이 50개 이상 발견되었다. Figure 7에 제41페이지에서 발견된 捨, 休, 慧, 正, 4개의 금속활자 주물제작 결함을 정리하였다. 동일한 위치의 동일한 글자가 각 판본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할 수 있다. 주물로 활자를 제작할 때 생긴 것으로 판단되는 결함은 유일하게 A: 공인본에서만 발견되고 다른 판본에서는 유사한 인쇄특징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A: 공인본이 최이의 발문에 적힌 대로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인쇄된 것으로 1239년 9월 상순에 인쇄된 금속활자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1959년부터 1988년까지는 F: 국립중앙도서관본, D: 삼성본과 A: 공인본만 세상에 알려진 상태였다. 모든 판본에 최이의 지문이 적혀 있었고 인쇄상태가 양호한 F: 국립중앙도서관본과 D: 삼성본은 목판인쇄본의 특징이 명확하게 나타났으므로 목판인쇄본으로 결론 내려지게 되었고 인쇄상태가 좋지 않은 A: 공인본은 판식이 같다는 이유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정밀분석을 하지 않고 서지학자들의 느낌만으로 목판인쇄본으로 평가절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직지』보다 인쇄시기가 138년이나 빠르고 현존하는 세계최고(世界最古)의 금속활자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A: 공인본에 대한 재조사와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고찰 및 결언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이어졌던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인쇄방법, 인쇄순서 및 인쇄시기의 판정에 관하여 이미지의 비교와 분석을 통한 인쇄된 글자의 특징을 정량화하는 방법으로 종래의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에서 객관적인 판단의 영역으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13세기에서 16세기에 금속활자와 목판으로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유사한 여섯 가지 판본의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여 통계자료를 근거로 각 판본의 인쇄방법, 인쇄순서와 인쇄시기를 추정하였다. 동일한 위치에 인쇄된 동일한 글자의 인쇄면적을 정량화하여 비교하는 방법으로 번각에 따른 자획의 굵기와 인쇄면적이 증가되는 현상과 경향성이 관찰되었다. 목판의 거듭되는 번각과정에서 글자체의 변형과 여러 글자에서의 판각 실수도 확인되었다.
금속활자 주조 시에 발생한 결함이 함께 인쇄된 글자의 유무와 인쇄상태의 특징, 글자의 모양, 글자를 구성하는 획의 굵기, 인쇄면적의 대소관계를 면밀하게 조사하였다. 여섯 가지 판본의 개별 글자, 행별, 페이지별 이미지의 비교와 분석을 통하여 A: 공인본(空印本)은 1239년 9월 상순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판정되었다. 여섯 가지 판본 중에서 가장 이른 판본이며 금속활자로 인쇄된 원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나머지 다섯 가지 판본은 금속활자본을 목판으로 번각하여 인쇄한 것으로 인쇄면적의 증가경향과 다른 논문(Yoo and Kim, 2021; Yoo, 2022a; Yoo, 2022b)에서 소개한 글자모양의 변화, 목리문의 발생, 목판의 손상으로 인한 획탈락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인쇄순서를 판정하였다. 다섯 가지 판본의 인쇄순서는 B: 반야사본(般若寺本), C: 대구본(大邱本), D: 삼성본(三省本), E: 종로도서관본(鍾路圖書館本), F: 국립중앙도서관본(國立中央圖書館本)의 순으로 판명되었다.
고서에 인쇄 방법, 인쇄 시기 및 인쇄에 이르게 된 배경을 기록한 간기가 없더라도 동일한 고서의 판본이 여러 종류 존재할 경우에는 고서 판본 간의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여 각 판본의 인쇄방법과 인쇄시기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자료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空印本)은 『직지』가 인쇄된 1377년보다 138년 앞선 시기로 『상정고금예문』이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1234년의 5년 후에 해당한다. 현재는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空印本)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될 수 있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위한 준비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에 없는 『직지』의 명예에만 안주하지 말고 1239년의 인쇄 당시부터 국내에 남아 있으며 어언 800년간 우리 민족의 곁에서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空印本)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고인쇄기술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