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고대부터 중국, 한반도를 거쳐서 대륙의 문화와 기술이 일본에 들어와 정착·발전했으며, 그 대륙에서 들어온 기술 의 하나로 “인쇄”를 언급할 수 있다. “인쇄”가 일본의 종 교, 교육, 문화 예술에 끼친 영향은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없 을 정도로 막대하다. 약 1300년간 일본의 주요 출판은 목 판 인쇄였으며, 그 목판 인쇄의 근저에 있는 것이 판목(板 木)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근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판목 연구(
Nagai, 2014), 디지털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보는 판 목연구(
Kaneko, 2013)가 진행되었으나, 문화재로써 과학 적인 접근의 판목연구는 진행된 사례가 없었다. 그로 인해 일본 국내에는 판목 자체에 중점을 둔 기존 연구가 없으며, 판목의 실태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 현황이다. 판목이 과학 적인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한 이유로는 판목은 인쇄할 때의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판본(版本)과 우키요에 (浮世絵) 등에 연구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점을 언급할 수 있다. 또한 판목을 제작하는 것은 장인(匠人)들의 일로 여 겨지며, 장인의 세계에 연구자가 진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판목의 중요성은 나가이 카즈아키 (永井一彰)가 판목에는 출판업자나 제작자가 무엇을 생각 했고, 어떻게 취급되었는지가 형태로 분명히 남아 있다 (
Nagai, 2014)고 말했듯이, 판목에는 제작자의 다양한 흔 적이 남아 있다.
판목은 입체적인 구조의 유물이다. 2차원 화상과 인쇄 에는 나타나지 않는 판목 내부 정보와 시간순의 정보를 보 다 명확하게 수집, 해명하기 위해서는 3차원 계측이 효과 적이다. 판목 내부 구조를 비파괴로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X선 CT 스캐너와 육안이나 현미경 등 2차원에서는 관찰이 어려운 조각면의 세밀한 부분의 관찰에 3차원 디지 타이저를 사용하는 것은 판목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게 하 며 판목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대상 및 방법
본 장에서는 수종 동정 및 X선 CT스캐너, 3차원 디지타 이저를 이용한 판목의 구조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판목에 는 벚나무나 회양목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의 목판 인쇄 장인도 대부분 벚나무를 판목에 사용하 고 있지만, 목판 인쇄에 사용되는 수종을 실제로 동정한 예 는 극히 적었다.
판목에 마구리를 장착하기 위한 못의 깊이, 나뭇결의 종 류, 내부 구조 등, 판목을 관찰 시 다양한 의문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내부 상태를 조사할 때는 X선 투과 촬영이 이용 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X선 투과 촬영에서는 입체적으로 문화재를 투과 촬영할 수 없고 문화재의 크기 와 촬영을 하고 싶은 각도 등의 제약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 는 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규슈 국립 박물관(九州国立博物館)의 CT스캐너(CT Modular320FPD, YXLON International, Germany)로 3점의 판목을 조사하 였다. 기존의 X선 투과촬영을 이용한 내부 관찰도 진행하 였지만, 2차원 화상으로는 전후의 겹쳐진 화상으로부터 상 세한 내부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다. X선 CT스캐너 는 검출된 화상을 컴퓨터상에서 재구축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내부의 단층적인 관찰이 가능하였다. 또 한, 데이터 상에서의 확대, 축소, 단면 관찰을 통하여, 계측 이나 내용물의 추출도 가능하였다.
판목은 먹이나 안료 등이 부착되어, 육안이나 2차원 관 찰 방법으로는 상세한 관찰이 곤란한 경우가 많으며, 사진 촬영 시 빛이 먹에 반사되어 표면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촬 영방법에 어려움이 많았다. 3차원 디지타이저는 물체의 표 면을 상세하게 스캔하여 3차원 정보로 표현한다. 따라서 먹으로 표면이 오염되어 있어도 표면 관찰이 가능하며, 데 이터를 추출해 확대, 축소 및 단면 관찰이 가능하다(Figure
10).
2.1. 연구 대상
수종 동정은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大阪府立中 之島図書館)소장의 판목 44점과 나라대학 박물관(奈良大 学博物館)소장의 코우야반(高野版)판목의 마구리 1점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X선 CT스캐너를 이용한 조사는 총 3점의 판목을 대상 으로 실시하였다. 창기첩(暢寄帖) 판목(나라대학박물관 소 장 T1964)은 1869년에 제작되었으며, 2장의 판재를 접합 한 판목이었다. 명가약전(名家略伝) 판목(나라대학박물관 소장 T1344)은 1841년에 제작되었으며, 금속제 못이 박혀 있는 판목이었다. 아언통재초(雅言通載抄) 판목(나라대학 박물관 소장 T2506)은 1861년에 제작되었으며, 충해를 입 은 판목이었다.
3차원 디지타이저를 이용한 조사는 속문장궤범찬평(続 文章軌範纂評)으로 추정되는 판목(나라대학박물관소장 T1486)의 양면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연대는 불명이며, 조각 도중에 제작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2.2. 연구 방법
수종 동정은 각 자료로부터 미량의 시료를 채취하여 나 라대학교의 광학 현미경(Primo Star, ZEISS, Germany)으 로 관찰하였다.
X선 CT스캐너를 이용한 조사에는 규슈국립박물관의 X선 CT스캐너(CT Modular320FPD, YXLON International, Germany)를 사용하였으며, 320 kV의 조건에서 조사하였다.
3차원 표면 관찰에는 규슈국립박물관의 3차원 디지타 이저(ATOSIII Model400, GOM, Germany)를 이용하여 조사하였으며, 좌우의 카메라로 최소 0.02 mm 단위로 계 측하였다.
연구 결과 및 고찰
3.1. 수종 동정
나카노시마 도서관 소장 판목의 경우, 방사단면은 도관 (Vessel)이 단천공(Simple perforation)으로 내부 공간에 착색물질이 있으며, 내벽에 미세한 나선형 비후(Spiral thickening)가 존재했다. 접선단면은 내부 공간에 착색물 질이 있으며, 방사조직(Xylem ray)은 폭 1~4 세포, 높이 34 세포로 확인했다. 구분하기 어려운 평복 세포(Procumbent cell)와 방형 세포(Square cell)가 존재하고 있었다. 횡단면 은 소도관(Small vessel)이 산재하면서 방사 방향으로 연 결되어있으며, 도관(Vessel)의 크기는 거의 일정했다. 채취 한 시료의 각 면의 세포 특성으로부터, 오사카부립 나카노 시마 도서관의 판목은 장미과 벚나무속의 산벚나무로 동 정했다(Figure
1,
2).
Figure 1
Wooden printing block(Osaka Prefectural Nakanoshima Library).
Figure 2
Sectional features of Prunus spp..
나라대학 박물관 소장 코우야반 판목의 마구리의 경우, 접선단면에서 수지세포(Resin cell)가 확인되었으며, 세포 는 1~10단으로 관찰되었다. 횡단면은 춘재(Early wood)에 서 만재(Autumn wood)로의 이행이 완만하고 만재의 폭이 좁으며, 춘재와 만재의 경계에서 세포수지가 확인되었다. 이상의 결과로부터 편백으로 동정했다(Figure
3,
4).
Figure 3
Different type of “End Pieces” of wooden printing blocks.
Figure 4
Sectional features of Chamaecyparis obtusa.
판목의 자재는 조각하기 쉽고, 여러 번의 인쇄에도 견딜 수 있는 재료이어야 한다. 경질의 벚나무를 판목의 자재로 사용했던 사실로부터, 판목사(板木師)는 나무의 특징을 파 악하고 판재를 구입, 조각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일본에 서는 판목의 제작에 벚나무를 사용한다고 구전으로만 전 해져 왔으나, 이번 수종 동정과 Ito의 조사 결과로부터 정 설대로 벚나무속 나무가 사용된 비율이 높았던 것이 과학 적으로 판명되었다(
Ito, 2000).
일본에서 판목의 마구리에 편백이 사용된 것이 실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편백이 마구리에 사용된 이유는 벚나무의 높은 가격으로 인하여 입수가 곤란하였 던 점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려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3.2. X선 CT스캐너 조사
창기첩 판목의 판재에서는 2장의 판재가 접합된 것이 확인되었다. 접합된 2장의 판재는 모두 접선단면의 목재를 사용하였으며, 투과도로부터 같은 수종의 판재임이 판명 되었다(Figure
5,
6). 명가약전 판목에서는 금속제 못이 판 목 내부에 박힌 위치와 깊이, 나무의 수축에 따른 못의 변 형이 확인되었다. 총 6개의 금속제 못의 평균 길이는 30 mm이었다(Figure
7). 아언통재초 판목은 충해를 입은 부 분뿐만 아니라, 생존중인 벌레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 다(Figure
8).
Figure 5
Figure 6
Observation of wooden printing block with 3D CT scanner(Nara University Museum T1964).
Figure 7
X-ray CT images of Japanese nail(Measurement by X, Y, Z axis)(Nara University Museum T1344).
Figure 8
Observation of insect holes with 3D CT scanner(Nara University Museum T2506).
이번 조사를 통해 판목의 나뭇결과 접합 상태, 내용물의 확인과 계측, 추출, 내부 열화상태의 시각적 조사가 가능하 였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한 부분을 단층적 으로 확인, 계측, 추출하는 것이 가능했던 유의미한 조사였 다. 전술한 바와 같이 CT스캐너는 투과도에 따라서 물체의 화상을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Figure
7과 같이 못의 화 상을 추출하여 360°로 관찰함으로써, 못을 3D 프린터로 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체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추출 할 수 있는 CT스캐너는 각 시대에 사용된 쇠못 등의 3차원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기술사(技術史)에도 활용할 수 있 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는 충해로 인해 발생한 구멍을 입체적으로 관 찰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지만, CT스캐너를 이용하여 가능 하게 되었다. 목조문화재를 수복할 때에도 충해로 인한 구 멍들의 구조를 조사해두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이번 조사 에서 밝혀진 훈증 처리된 판목에 생존중인 벌레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지속적인 열화의 가능성과 향후 보존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의 필요성이 도출되었다.
3.3. 3차원 디지타이저 조사
3차원 디지타이저를 통하여 상세한 데이터의 취득이 가 능하여, 판목이 사다리꼴 형태로 조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Figure
9,
10). 또한, 판목을 제작할 당시에 사용되 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와 제작 순서의 판명이 가능하 였다(Figure
11).
Figure 9
Observation of under carving wooden printing block with 3D digitizer(Nara University Museum T1486).
Figure 10
Trapezoidal character found with 3D digitizer.
Figure 11
스리시(摺師)로부터 취재한 내용에 의하면 판목에는 표 면에 먹이나 안료가 남아있지 않도록 판목사가 방법을 고 안한다는 서술이 있었다. 조각 표면을 사다리꼴로 만들었 기 때문에 인쇄 시 여분의 안료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따 라서 판목 자체의 내구성이 향상되어, 여러 번의 인쇄에도 버틸 수 있게 고안되어 있었다. Figure
10의 도서용 판목은 사다리꼴의 모서리 부분이 마모되어 있어서 여러 번 인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각 당시에 사용된 도구의 종류도 조각 흔적으로부터 판명되었다. 넓은 부분은 원형의 큰 조각도로, 좁은 부분은 소도(小刀)로 조각되었다. 또한 조각 흔적을 통해 새긴 순 서를 밝혀낼 수 있었다(Figure
11).
이와 같이 지금까지 장인들의 경험이나 구전으로만 전 해져 내려오던 판목의 제작 기술이, 3차원 계측에 의해 누 구나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향후 도서용 판목뿐만 아니라 경전이나 우키요에용 판목에도 적용하여, 장인의 지혜와 기술을 밝히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 론
본 연구에서는 일본 목판 인쇄술의 근저에 있는 판목의 수종 동정과, 3차원 계측을 중심으로 한 구조 관찰을 진행 하였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사료, 자료로써 가치를 갖는 판본 (版本)만이 주목을 받아왔으며, 무게와 부피로 인하여 넓 은 보관 장소가 필요하며 외견이 화려하지 않은 판목(板木) 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방치 또는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 다. 그러나 판목은 출판사(出版史), 유통사(流通史), 정치 및 도서문화의 기원이며, 일본이라는 국가를 형성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판목은 다양한 사람의 손을 거쳐 전해져 온 중요한 전세문화재(傳 世文化財)일뿐만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도 목판 인쇄의 살 아있는 문화재이다.
본 연구를 통하여, 기존의 과학적 방법에 더해 내부의 360° 관찰 및 내용물의 추출, 계측, 상세한 단면 관찰 등, 지금까지 판목 연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연구방법과 그 유효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의 조사 사례는 적지만 향후 3차원 계측을 이용한 판목 연구 를 계속하여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 로 판목 연구에 공헌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