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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Conserv. Sci > Volume 37(5); 2021 > Article
1900년대 초반의 기록사진과 디지털 카메라 사진분석을 활용한 광화문 앞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

초 록

경복궁 광화문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해체 이전되었다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1968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중건되었다가 정확한 복원을 위해 다시 해체되어 2010년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광화문 앞에 놓여져 있던 한 쌍의 해치상도 해체되어 방치되어 있다가 원위치에서 수차례 이탈해 본래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문화재청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일환으로 월대와 해치상을 복원하기로 함에 따라 사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1900년대 초반의 기록사진과 새롭게 찍은 디지털 카메라 사진에 대한 이미지분석을 통하여 해치상의 원위치를 추정하는 방법과 결과를 제안한다. 기록사진의 촬영 위치를 찾아 재촬영하고 찾고자 하는 피사체와의 각도와 거리를 계산하여 일제 강점기 이전의 해치상의 원위치를 추정하는데 성공하였다. 본 연구를 통하여 확인된 왼쪽 해치상의 위치는 현재의 왼쪽 해치상 표시석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약 9.6 m, 북쪽으로 약 7.4 m 지점에 있으며, 오른쪽 해치상은 현재의 오른쪽 해치상 표시석의 중앙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약 1.9 m, 북쪽으로 약 8.0 m 지점에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기록사진을 이용한 건축물의 위치복원을 시도한 사례가 국내외에서는 처음이나 문화재복원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인 방법론으로서 본 연구의 의미가 있다.

ABSTRACT

Gwanghwamun Gate of Gyeongbokgung Palace was dismantled and reloc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reconstructed with reinforced concrete in 1968, and finally erected at its present location in 2010. A pair of Haechi statues located in front of Gwanghwamun was dismantled and relocated several times, and the statues have yet to be returned precisely to their original positions. This study assesses the historical accuracy of their current placement under the Gwanghwamun Square Restructuring Project of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and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based on archival photos from the early 1900s, and proposes a method to estimate the original positions of the Haechi through image analysis of contemporary photographs and recent digital camera photos. We estimated the original position of the Haechi befor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y identifying the shooting location of the archival photo and reproducing contemporary photographs by calculating the angle and distance to the Haechi from the shooting location. The leftmost and rightmost Haechi were originally located about 9.6 m to the east and 7.4 m to the north and about 1.9 m to the west and 8.0 m to the north, respectively, of their current location indicators. As the first attempt to determine the original location of a building and its accessories using archival photos, this study launches a new scientific methodology for the restoration of cultural properties.

1. 서 론

문화재는 전쟁과 약탈, 자연재해와 풍화, 개발과 도굴 등으로 훼손되어 시간이 지나 그 원형을 찾으려고 하면 자료와 증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서울특별시의 상징이기도 한 광화문과 그 주변의 문화재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광화문(光化門)은 1395년 처음 만들어진 2층 누각을 가진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총독부 청사가 완공된 이듬해인 1927년에 건춘문(建春門: 경복궁의 동문) 쪽으로 해체 이전되었다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고, 1968년에 중앙청으로 사용되던 옛 조선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추어 철근 콘크리트로 중건(重建)되었다. 2006년부터 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광화문을 고종황제(高宗皇帝) 재위 시의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해체하고 2010년에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虹霓門, 아치형의 문)이 있는데 조선시대 궁궐 문 가운데 유일한 사례이다. 광화문의 앞쪽에는 주변보다 높게 단을 쌓아 만든 월대(月臺)가 있었고 월대의 끝자락 부분 어딘가에 해치(獬豸또는 獬廌)상이 있었다. 1923년 10월 5일부터 24일까지 20일간 조선총독부의 후원과 조선농회(朝鮮農會)의 주최로 경복궁에서 개최된 조선부업품공진회(朝鮮副業品共進會)의 개막에 맞춰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상이 이전되어 오랫동안 경복궁 안쪽 구석에 방치되게 된다. 광화문의 중건, 해체, 복원, 도로 개통, 도로 확장 및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 등을 거치면서 여러 번 위치를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Kyunghyang Shinmun, 2018a).
2018년 4월10일, 서울특별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했다(Kyunghyang Shinmun, 2018b). 당초의 계획보다 약 6개월 지연된 2022년 4월까지 재구조화가 마무리될 예정이며 월대와 해치상의 복원은 2023년으로 예정되어 있다(Edaily, 2021).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위해 광화문 월대와 해치상 복원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본 연구가 진행된 2019년 당시에는 발굴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단계였기 때문에 해치상의 원위치를 추정하는 데 문헌이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Nam et al., 2020a; 2020b).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Encyclopedia of Historical Sites in Joseon (Korea)) (Government-General of Korea, 1930)와 같은 옛 자료들의 특성상 계량적으로 정확한 원위치를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고 이는 복원 사업 진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점에 착안하여 기록사진과 이미지 분석기법을 활용,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록사진을 이용하여 건축물의 원위치를 찾는 사례가 국내외에서는 처음으로서 비슷한 선행연구를 찾을 수 없었다. 기록사진을 이용한 분석결과는 향후의 발굴조사 결과와 비교검토되어야 하겠으나 근현대 문화재 연구 분야에 있어 발굴 전에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인 방법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1900년대 초반에 촬영된 광화문 및 해치상의 기록사진과 이미지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해치상의 원위치를 추정한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2. 조사 대상과 조사 방법

2.1. 광화문 및 해치상에 관련된 기록과 사진의 조사

본 연구의 검토대상은 서울 경복궁 광화문 앞의 해치상이다. Figure 1은 한일합병조약 전인 1907∼1910년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라는 제목의 도면으로 경복궁의 광화문으로부터 육조거리의 관청 건물의 배치 및 각 건물의 구조의 평면도이다(Seoul Museum of History, 2021). 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 문화관광부 청사 등이 있는 동쪽에는 내부(內部)-법무원(法務院)-학부(學部)-탁지부(度支部)-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가, 맞은 편인 서쪽에는 근위대대(近衛大隊)-경시청(警視廳)-군부(軍部)-법부(法部)-통신관리국(通信管理局)이 차례로 늘어서 있고 광화문 앞의 월대와 해치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 표시되어 있다. 1930년 3월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제10권에 실린 ‘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에도 해치상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나 도면이 작성될 당시에 이미 오른쪽의 해치상은 철거된 상태로 원래 있었던 위치만 표시되어 있다(Figure 2)(Government-General of Korea, 1930). 따라서 1923년에 개최된 조선부업품공진회 이전에 적어도 한 쪽의 해치상은 이미 철거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문헌에 표시된 해치상의 위치에서도 월대로부터의 거리에 차이가 보인다. 월대의 길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상에서 광화문과 해치상의 거리가 조선고적도보의 ‘경복궁배치도’에서 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면만으로는 월대나 해치상의 원모습을 정량적으로 추적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광화문 광장에 표시되어 있는 해치상의 원위치 표시석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위를 발굴할 수 없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경복궁 배치도’를 참고하여 설치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진자료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진은 인위적으로 변조하거나 가공하지 않는 한 촬영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어 피사체의 위치, 피사체 간의 거리, 크기 등에 대한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서 촬영된 옛 기록사진을 수집하였다.

2.2. 원위치 추정에 활용하기 적합한 기록사진의 선정

광화문과 해치상이 촬영된 기록사진을 수집하여 북악산, 광화문, 해치상이 모두 담겨 있는 기록사진을 선정하는 작업을 시행하였다. 사진은 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 경성(京城, 현재의 서울)의 명승지를 알리는 우편엽서 형식의 것이 많았으며 일부는 관광객 또는 학교 수학여행 등의 앨범으로 인터넷에 소개된 것들이었다. Figure 3에 광화문과 해치상이 촬영된 다양한 기록사진들을 예시하였다. 해상도가 낮아 검토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진은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또한 한 쪽의 해치상만 촬영되어 있는 사진과 해치상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여 해치상이 지나치게 크게 촬영되고 북악산과 광화문이 너무 작게 촬영된 사진도 분석대상에서 제외하였다. Figure 3의 여러 사진 중에서 4번 사진의 해치상이 비교적 좌우 대칭이고 북악산과 광화문의 크기도 적당한 구도로 촬영되어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원판 이미지 Figure 4를 제공받아 사용하였다(National Museum of Korea, 2007). Figure 4의 광화문과 한 쌍의 해치상의 모습이 잘 나타난 사진은 1900년대 초에 대형 대각선 길이 150 mm의 유리 건판(乾板)에 고해상도로 촬영된 것으로 Figure 2의 조선고적도보의 ‘경복궁배치도’가 그려지기 전인 1930년 이전에 촬영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기록사진의 구도로 보아 현재의 광화문광장에서도 거의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2.3. 기록사진 촬영위치 찾기와 디지털 카메라 사진의 재촬영

기록사진과 같은 구도의 사진 촬영의 성공은 건판사진의 촬영 위치를 추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광화문 주변의 모습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과의 비교를 통하여 해치상이 이전되기 전의 원위치를 추정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① 비슷한 구도가 나오는 지점을 중심으로 조금씩 이동촬영하여 최대 일치지점을 찾는다.
② 촬영지점의 좌표를 측량한다.
③ 기록사진과 ①에서 촬영한 사진의 구도를 일치시켜 하나의 사진으로 합성한다.
④ 촬영지점으로부터 해치상의 사진상의 크기와 이격 거리를 계산한다(Figure 5).
- 단계 1 : 비례법을 이용하여 사진촬영지점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사진 속 해치상의 크기 계산
HH=HHR×DGPDHP×HGHGR
- 단계 2 : 해치상의 실제 높이, 사진상의 높이, 촬영지점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를 사용한 촬영지점으로부터 해치상의 이격거리 계산
DHP=HHR×DGPHH×HGHGR
여기서
HG : 사진 속 광화문의 높이(Pixel)
HH : 사진 속 해치상의 높이(Pixel)
HGR : 실제의 광화문의 높이(meter)
HHR : 실제의 해치상의 높이(meter)
DHP : 촬영지점으로부터 해치상의 이격거리(meter)
DGP : 촬영지점으로부터 광화문의 이격거리(meter)
이다. 참고로 사진상의 광화문의 축적은 HG/HGR이 된다.
⑤ 촬영지점으로부터 광화문의 좌우 폭 G1, G2와 연장하는 녹색점선에 ③에서 합성한 사진 속 광화문의 폭을 일치시키고 앞에서 구한 이격거리에 위치시켜 해치상의 원위치를 구한다(Figure 6).
기록사진 이미지와 동일한 구도로 촬영하려면 기록사진의 촬영위치와 같은 위치에서 촬영해야 하므로 기록사진 촬영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광화문 사진을 촬영할 때, 기록사진의 윤곽선과 사진의 중심점을 표시한 투명 필름을 디지털카메라의 모니터 화면에 중심점을 일치하여 오려 붙였다. 가능하면 모니터 화면이 큰 카메라를 사용하여 모니터에 붙인 윤곽선과 사진 속 영상을 비교하며 기록사진과 같은 구도가 나오는 대략적인 기준지점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기록사진의 초점거리는 알 수 없지만 동일한 시야각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보다는 시야각이 조금 넓은 이미지를 촬영하여 기록사진 이미지 전체가 현재사진 이미지 안에 겹쳐서 표시될 수 있도록 촬영함으로써 촬영의 편리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촬영지점의 가로와 높이의 범위를 좁히기 위하여 기준지점을 중심으로 좌우로 5 m의 구간을 1 m 간격으로(-5 m, -4 m, -3 m, -2 m, -1 m, 0 m, +1 m, +2 m, +3 m, +4 m, +5 m), 사진 촬영의 높이는 현재의 지상높이가 당시보다 높은 점과 사람의 키를 고려하여 지상 1.0 m, 1.25 m, 1.5 m의 3가지 높이로 33장의 사진을 촬영하였으며 그 일부를 Figure 7에 예시하였다.
해치상의 높이는 3.3 m이지만 노출된 지대석까지 포함하면 약 3.6 m로 측정된다. 현재 복원된 광화문 문루의 높이는 18.93 m (1920년대 실측은 18.45 m)인 점을 고려하여 광화문 중앙문으로부터 촬영지점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촬영지점으로부터 해치상의 원위치까지의 거리를 삼각비를 사용하여 계산하였다.

2.4.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 및 촬영장비

기록사진과 현장에서 촬영한 이미지의 비교와 분석은 수년 전부터 문화재 분석분야에서 각종 이미지의 비교와 분석에 활용이 보고되고 있는 이미지분석 소프트웨어(PicMan, WaferMasters, Inc.) (Kim et al., 2019a; 2019b; Yoo, 2020; Yoo and Yoo, 2021; Lee and Wi, 2021; Yoo et al., 2021)를 활용하였다. 디지털 사진촬영에는 모니터의 화면이 크고 이동이 간편한 장비인 Apple iPad를 사용하였으며 초점거리 4 mm, 사진크기는 가로 2592, 세로 1936 화소이다.

3.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

3.1. 기록사진으로부터의 해치상과 배경의 윤곽 추출

기록사진에서 추출한 북악산, 광화문, 해치상의 윤곽을 추출하여 빨간 실선으로 표시하고 여러 장의 사진과 비교하여 사진의 구도가 기록사진의 구도와 가장 유사한 사진에서 광화문의 크기가 같아지도록 축척을 조절한다. 1900년대 초반에 유리건판에 촬영한 기록사진을 디지타이즈한 이미지의 크기는 가로 7795화소, 세로 5811화소이고 Apple iPad로 촬영한 사진의 크기는 가로 2592, 세로 1936화소로 최근에 촬영한 사진을 확대하여 기록사진에서 추출한 광화문의 윤곽의 크기에 맞게 조정하였다. 기록사진에서 추출한 광화문과 해치상의 윤곽을 최근에 촬영한 사진에 겹쳐서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을 시도하였다(Figure 8).
기록사진과 가장 유사한 구도는 광화문의 중앙문에서 직선거리로 133.13 m 떨어진 기준점(C)에서 왼쪽으로 2 m 이동한 위치의 지상으로부터 1.0 m 높이에서 촬영한 Figure 7의 L2 사진이다. 각각의 사진촬영 위치에서는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을 통하여 위치좌표를 수집하고 기록하여 광화문과의 위치관계를 정량적으로 추정하여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에 활용하였다. 참고로 기준점 C의 GPS 좌표는 X (East) 값이 197949.69, Y (North) 값이 552790.87이었으며 H (Elevation) 값은 32.33이었다. 본 연구에서 사진의 구도가 가장 유사하게 촬영된 지점(L2)의 GPS좌표는 X (East) 값이 197947.67, Y (North) 값이 552790.97이었으며 H (Elevation) 값은 C에서의 값과 같았다.

3.2.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

해치상의 원위치는 이미지분석 소프트웨어(PicMan)를 사용하여 선정된 기록사진으로부터 북악산, 광화문, 해치상의 윤곽을 추출하여 기록사진과 구도가 가장 유사하게 촬영된 현장사진을 겹쳐서 해치상이 이전되기 전의 위치를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 상에 표시하는 방법으로 추정하였다. Figure 9에는 1900년대 초반에 촬영된 기록사진과 최근에 촬영한 사진을 비교하기 쉽게 축척과 중심축을 맞추어 배치하고 두 사진을 겹쳐서 해치상의 원위치를 쉽게 추정할 수 있도록 표현한 사진을 실었다. 기록사진상에서 의 광화문의 지상으로부터의 높이에 해당하는 길이(화소수)와 해치상의 지상으로부터의 높이에 해당하는 길이(화소수)를 측정한 값과 기록사진과 같은 구도로 촬영한 사진의 촬영위치(L2)로부터 광화문 중앙문까지의 거리(DGP) 131.13 m를 바탕으로 촬영위치로부터 해치상의 원위치까지의 평균거리(DHP)는 식 2)에 의하여 56.9 m로 계산되었다(Figure 10). 해치상이 촬영위치로부터 멀어져 광화문쪽에 가까워질수록(DGH가 작아질수록) 사진상의 해치상의 크기는 작아져 보이고 해치상의 원위치보다 촬영 위치에 가까워질수록(DHP가 작아질수록) 해치상의 크기는 기록사진상의 해치상의 크기보다 크게 보이게 된다. 기단을 포함하여 약 3.6 m 높이의 해치상이 기록사진상의 해치상의 크기로 촬영되기 위한 거리를 토목공학에서 미지의 거리, 각도, 높이의 측정과 계산에 사용하는 삼각 측량법을 이용하여 계산하면 해치상의 원위치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촬영지점(L2)으로부터 해치의 원위치 각도는 앞에서 설명한 Figure 6의 방법에 의하여 녹색 점선과 56.9 m의 반원과의 관계를 통해서 구하였으며 동-서 해치상의 이격거리는 29.5 m이다(Figure 11).
Figure 12에 광화문광장의 위성사진 위에 해치상의 추정위치와 현재 해치상의 표시석이 놓여있는 위치를 정리하여 표시하였다. Figure 12에서 광화문 해치상의 원위치는 광화문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있는 해치상은 현재의 광화문 앞 광장을 지나는 도로상에 있으며 오른쪽에 있는 해치상은 광화문광장의 정중앙 부근으로 추정된다. 현재 표시되어 있는 왼쪽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 표시석의 위치는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할 때 사용하는 교통 섬에 놓여있고 오른쪽의 해치상의 원위치 표시석은 광화문광장의 보행자에게 개방된 공간에 검은색의 직사각형의 돌로 설치되어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확인된 해치상의 위치는 왼쪽 해치상 표시석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으로 약 9.6 m, 북으로 약 7.4 m 지점에 있으며, GPS좌표는 X (East) 값이 197924.03, Y (North) 값이 552837.08이다. 오른쪽 해치상은 서로 약 1.9 m, 북으로 약 8.0 m 지점에 있으며, GPS좌표는 X (East) 값이 197965.82, Y (North) 값이 552834.83이다(Table 1). 본 연구에서 사용한 광화문의 유리건판 사진은 가로 7795화소, 세로 5811화소의 디지타이즈(digitize)된 이미지 파일로 촬영지점에서 133.13 m 떨어진 광화문은 폭 31.76 m가 1760화소에 상당하는 축척으로 사진상에서의 1화소는 18 cm로 계산되며, 56.9 m 떨어진 해치상의 이미지에서는 1화소에 7.7 cm로 계산된다. 따라서 최근에 촬영된 비교적 낮은 해상도와 거리에 따른 오차는 7.7∼18 cm 이내의 오차범위를 가지며, 촬영지점의 추정위치에 대한 오차는 가로 1 m, 높이 0.25 m의 범위를 갖는다. 본 연구에서 추정한 해치상의 위치석과 해치상의 원위치의 차이는 한계 해상도인 18 cm보다 작게는 10배, 크게는 50배 떨어진 거리에 있으므로 오차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4. 고찰 및 결론

한일합병조약 전인 1907∼1910년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라는 제목의 도면으로 경복궁의 광화문으로부터 육조거리의 관청 건물의 배치 및 각 건물의 구조의 평면도(Seoul Museum of History, 2021)와 1930년 3월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 제10권에 실린 ‘경복궁배치도’(Government-General of Korea, 1930)에 해치상의 위치가 작게나마 표시되어 있다. 두 개의 도면상에서 광화문으로부터 해치까지의 거리가 각각 달라서 어느 하나의 기록을 신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경복궁배치도’에서는 왼쪽(서편)의 해치상은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동편)의 해치상은 흰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도면이 작성될 당시에도 왼쪽(서편)의 해치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3년과 1929년에 해치상의 이동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조선도적도보 10권의 발간연대(1930년)를 감안하면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다른 사진이나 도면과 마찬가지로 책 발간 이전에 배치도가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사진 분석을 통해 해치상의 원위치를 추정한 결과, 현 광화문광장의 해치상 표시석 위치와는 상당부분 떨어진 위치에 해치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문헌상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8년에 서울특별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했고, 예정대로라면 월대와 해치상의 복원은 2023년에 이루어질 것이다.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가 광화문 월대 및 해치상 추정지를 발굴조사할 때 현재 설치된 해치상 표시석보다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원위치가 추정됨을 고려하여 조사하고 복원하기를 기대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09∼1945년 촬영된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유리건판 사진 38,000여 장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에는 일제 강점기에 왜곡 또는 훼손되기 이전의 궁궐과 주변 모습을 담은 사진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방대한 기록사진 자료들과 이미지 분석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조선 궁궐의 복원, 관리 및 왜곡 또는 훼손 과정 등에 관한 관련 분야 연구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굴조사에 앞서 기록사진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면 조사의 효율성을 크게 제고할 수 있을 것이며 발굴의 기획단계에서도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사진이 가지고 있는 촬영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중요한 정보를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문화재와 문화재에 관한 기록이 사라지거나 훼손되었다.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는 사진기술의 발명과 보급이 시작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진은 촬영 당시의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기록을 목적으로 한 사진이든 우연히 촬영한 사진이든 촬영 당시의 정보를 기록하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인화된 사진은 물리적으로 버려지고 디지털 사진은 간단하게 삭제되는 것이 일상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적극적인 활용법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으며 문화 콘텐츠의 개발에도 많은 아이디어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기술이 국내에 도입된 것이 19세기 후반의 일이기 때문에(Yoo and Yoo, 2021) 기록사진을 활용한 문화재 복원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에서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19세기 말의 기록사진을 활용한 우리 건축문화재의 복원 사례는 일부 보고되고 있다. 1899년 5월부터 조선시대의 미국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다가 102년 만에 우리 손에 다시 들어오게 된 워싱턴 D.C (Washington D.C.)에 소재한 ‘대됴션쥬미국공사관(美國華盛頓朝鮮公使館)’ 건물이 그 예이다(Kim, 2014). 이 건물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주변 지도와 건축양식 등의 고증을 통하여 외관을 복원하고 국내외 여러 곳에 산재(散在)되어 있는 각종 기록사진을 근거로 당시의 건물 내부의 중앙홀, 응접실, 서재, 식당 등의 내부시설과 장식을 복원한 예가 보고되고 있다. 공사관의 내부시설과 장식의 복원에는 각국의 공사관을 주로 촬영한 사진가 프란시스 벤자민 존스톤(Frances Benjamin Johnston)이 1893년에 촬영된 사진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Kim, 2014; Kim, 2018; Kang, 2018). 앞으로는 각종 문화재의 복원에 기록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영상자료들도 귀중한 참고자료 및 고증자료로 활용되는 기회가 점점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사 사

본 연구를 수행과정에서 실무적으로 원활한 협의와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중간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휴니텍의 유병직 대표님과 국내에 사진기술이 도입된 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실제 사진촬영상의 주의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진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정희광 사진작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신 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현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유재은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Figure 1.
The Surveyed Map of a Government Office; This is the layout of the government office building on Yukjo(六曹) Street and the floor plan of each building structure, which appears to have been created around 1907-1910. Centering on Gwanghwamun Gate, to the east, the Ministry of Interior, Judicial Office, Ministry of Education, Ministry of Taxation, Judicial Training Center, and on the opposite side, the Guards Battalion, Police Department, Military, Justice, and Communication Management Bureau are lined up in that order (Seoul Museum of History, 2021).
JCS-2021-37-5-07f1.jpg
Figure 2.
Gyeongbokgung Palace floor plan. A pair of Haechi (Stone Lion) Statues are indicated in small rectangles in red circles. One statue on the right had been removed at the time of the drawing in 1930. On the floor plan, solid black shapes represent the remaining buildings, and gray colored shapes indicate the buildings no longer existing at the time of the drawing (Government-General of Korea, 1930).
JCS-2021-37-5-07f2.jpg
Figure 3.
Various archival photos of Gwanghwamun Gate and Haechi (Stone Lion) Statues (Sources omitted for convenience).
JCS-2021-37-5-07f3.jpg
Figure 4.
An archival photograph of a glass plate taken in the early 1900s used for comparison with the present day Gwanghwamun Gate and Haechi (Stone Lion) Statues (Source: National Museum of Korea, 2007).
JCS-2021-37-5-07f4.jpg
Figure 5.
A schematic illustration and formulas for estimating the original position of Haechi statues from the photographing position (L2) based on the dimensions in the archived and newly taken photographs.
JCS-2021-37-5-07f5.jpg
Figure 6.
Matching the width of Gwanghwamun Gate in the superimposed photo at step ③ to the green line extending from the photographing point to the left and right widths G1 and G2 of Gwanghwamun Gate and determine the original position of Haechi statues by placing the archived photo at the estimated distance from the photographing point.
JCS-2021-37-5-07f6.jpg
Figure 7.
Comparison case with the outline extracted from the archival photo and the actual photos taken while adjusting the photographing location and height (the first number represents the distance moved to the left from the reference point in meters, and the second number represents the photographing height from the ground).
JCS-2021-37-5-07f7.jpg
Figure 8.
A photograph with the highest similarity to the red outline of archival photographs from early 1900s.
JCS-2021-37-5-07f8.jpg
Figure 9.
(a) A photograph showing both Haechi (Stone Lion) statues in the archival photo (top), (b) a recently taken photo, and (c) the extracted Haechi images from the archival photo superimposed on the recently taken photo by aligning with the skyline (Gwanghwamun Gate and Mountains on the background).
JCS-2021-37-5-07f9.jpg
Figure 10.
Projected height of Haechi statue relative to the Gwanghwanmun Gate in the photograph as a function of distance from Haechi statue to photographing point (DHP).
JCS-2021-37-5-07f10.jpg
Figure 11.
A screen capture image of image analysis software (PicMan) under estimation of the original location of Haechi (Stone Lion) statues by placing reduced an archival photograph on the map of the current (Summer 2019) Gwanghwamum Gate Plaza.
JCS-2021-37-5-07f11.jpg
Figure 12.
Estimated locations of original Haechi (Stone Lion) Statues in the early 1900s (green rectangles) and current indicator locations (black rectangles) in the Gwanghwamum Gate Plaza as of the Summer of 2019.
JCS-2021-37-5-07f12.jpg
Table 1.
The coordinate of the center of Haechi position indicators and the estimated original center positions of the Haechi Statues in front of Gwanghwamun
Center coordinates of current Haechi indicator Center coordinates of original Haechi location Separation distance
Left (west side) Haechi Statue X(east) : 197923.98 X(east) : 197924.03 To east 9.6 m
Y(north) : 55283.12 Y(north) : 552837.08 To north 7.4 m
Right (east side) Haechi Statue X(east) : 197965.70 X(east) : 197965.82 To west 1.9 m
Y(north) : 552834.74 Y(north) : 552834.83 To north 8.0 m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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