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종묘(宗廟)는 조선왕실의 제례를 올리는 왕실의 사당이며 조선 말기 헌종(1836)대에도 정전의 4칸을 더 증축하였을 정도로 500년 줄곧 조선 왕실에서 종묘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17). 정전은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진 구조로 지붕의 위에는 바닥 밑을 가리기 위하여 꾸민 상부 구조물인 반자(班子)가 있다. 광해군 원년(1608) 종묘가 증축될 시기의 반자의 구조는 살창에 종이를 두껍게 겹쳐 만든 판을 바른 ‘우물지반자(井紙班子)’로 정배지로서 능화지를 도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나(Table 1), 현재는 고종 7년(1870) 반자판을 목재로 교체한 결과 목반자판 위에 도배지를 바른 형태가 남아있다(Lee, 2023).
궁궐에서의 도배지는 일반적으로 방의 내부에만 도배를 한 전통 가옥과는 달리, 실내 마감재의 기능적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건물의 내부 의장을 결정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정전의 반자 도배를 위해 사용된 정배지는 능화지로써 특히 청능화지는 조선 왕실에서 위계 높은 공간의 장식을 위해 사용되었다(Research society of YeonggeonUigwe, 2010a).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근대기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궁궐 도배지와 양식이 서양식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기록에서 확인되는 청능화지는 전해지는 실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는 고건축과 왕실문화 복원의 일환으로 청능화지를 재현하고자 하였으며 실존유물 탐색 과정에서 종묘 정전 반자에 부착되어 있던 도배지를 통해 고문헌 기록 상 청능화지로 추정되는 청염색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종묘 정전 반자에 도배되어 있던 다양한 종류의 종이를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왕실에서 위계 높은 건물에 사용된 도배지의 특성과 구성 재질을 확인하고, 왕실 도배지 재현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2. 재료 및 방법
2.1. 분석 시료
종묘 도배지 확보를 위해 궁능유적본부 종묘관리소의 조사 협조를 받아 해체된 정전 지붕의 내부 반자틀에서 도배지 시료 24점을 수습하였다. 조사는 2022년 8월 종묘 정전에서 수행되었으며, 종묘 정전 보수공사 중 목부재 및 수제 기와 교체를 위해 지붕을 일부 해체함에 따라 반자에 사용되고 있던 종이 6편(片)을 수습하였다(Figure 1). 시료의 위치는 제4실, 제13실, 제15실, 제17실의 반자틀 상⋅하부이며 제4실은 광해군, 제13과 제15실은 영조, 제 17실은 헌종대로 각 재실은 건립 시기가 다르다.
수습된 시료는 항온항습실에서 온도 23±1℃, 습도(RH) 50±2%의 조건으로 48시간 이상 조습하였다. 붓 등 소도구 등을 활용한 건식세척 후 층위 분리를 수행한 결과 총 24점의 시료가 확보되었으며 해당 시료를 대상으로 과학적 분석을 수행하였다. 확보된 전체 시료 목록과 시료 명칭 및 수습위치는 다음과 같으며(Table 2~ 5), 시료의 명칭은 숫자 ‘1’을 해당 층위의 가장 바닥 층위로 하여, 숫자가 커질수록(1→2→3→4) 상위(上位) 층으로 명명하였다.
시료 분리 결과 ‘J4.1-2’, ‘J13.1-1’에서 선명한 문양이 관찰되었으며, 이는 각각 연화문과 만자(卍字)문으로 확인되었다. 연화문은 전통적으로 위대한 힘, 기(氣), 생명, 영원불멸, 탄생, 재생, 하늘, 신과 부처 등을 상징하였으며 (Jo, 2019), 만자문은 “길상운해”의 의미로 인간의 장수만복과 연계시켜 궁궐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Jang, 2011).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제례를 올리는 공간으로서 연화문과 만자문이 지니는 의미를 담아 청능화지를 제작하여 도배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Figure 2).
2.2. 분석 방법
분석 시료의 과학적 특성 분석은 ①현장 시료 수습, ② 조습⋅클리닝, ③층위 분리, ④과학적 분석의 순서로 이루어졌으며(Figure 3) 층위 분리 후 시료 24점을 대상으로 염색시약에 의한 섬유식별, 평량, 두께 등 지질의 물성측정, 청색 발원물질 분석 등을 수행하였다.
섬유 식별은 시료의 상태를 고려하여 Graff “C” stain 염색법을 사용하였으며 발색 물질 분석을 위해 비파괴 조사법인 자외-가시광 분광광도분석(Ultraviolet-Visible Spectrophotometer, UV-Vis)을 수행하여 안료 및 염료 유무를 우선적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분석이 완료된 시료를 대상으로 가스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 GC) 분석을 수행하여 사용 염료의 종류를 보다 면밀히 파악하고자 하였다.
2.2.1. Graff “C” stain 염색에 의한 섬유 식별
‘KS M ISO 9184-4: 그라프 “C” 염색 시험’에 의거하여 C-stain법을 실시하였으며 식별 방법은 다음과 같다. 준비된 섬유 슬라이드 위에 2∼3 방울의 Graff “C” 염색 용액을 떨어뜨린 다음 커버글라스를 씌우고 1∼2분 간 방치했다가 여분의 용액을 필터페이퍼 등을 활용하여 제거 후 광학현미경(Eclipse Ni-E, Nikon, Japan)을 사용하여 섬유를 관찰하였다.
2.2.2. 평량(g/m2), 두께(mm), 밀도(g/cm3) 측정
종묘 정전 도배지 24점을 대상으로 평량(종이의 중량(g), 1×1(m) 당 종이의 무게, g/m2), 두께(종이 한 장의 이, mm), 밀도(종이의 부피에 대한 무게, g/cm3)를 측정하였다. 평량은 ‘KS M ISO 536: 종이 및 판지-평량 측정’, 두께와 밀도는 ‘KS M ISO 534: 종이 및 판지-두께, 밀도, 비용적 측정’을 근거로 분석을 수행하였다. 두께 측정 시 두께측정기(Thickness tester, L&W, Switzerland)를 사용하여 6회 측정 후 평균하였으며 평량 값을 두께로 나누어 밀도를 구하였다.
2.2.3. 자외-가시광(UV-Vis) 분광광도분석
종묘 정전 도배지 24점 중 청색지로 확인된 9점을 대상으로 자외-가시광 분광광도분석(UV-Vis, Ultraviolet-Visible Spectrophotometer, FLMT02291, Ocean optics, USA)을 실시하였다. UV-Vis 분석은 자외선(Ultraviolet rays, 10∼400 nm)부터 가시광선(Visible rays, 380∼780 nm) 영역까지의 빛을 시료에 비추어, 측정된 흡광도를 통해 물질의 정량⋅정성 분석을 할 수 있는 비파괴 분석법이다. 본 연구에서 는 UV-Vis를 활용하여 청색의 발원 물질과 염색 기법을 우선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2.2.4.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 분석
종묘 정전 도배지 24점 중 UV-Vis 분석을 통해 흡광도가 높게 검출된 청색지 7점을 대상으로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 Gas Chromatography, Agilent 7890A, Agilent, USA) 분석을 실시하였다. 전처리는 DCM(dichloromethane):메탄올 (methanol) 2 ml에 시료 0.2 g을 초음파로 추출 후 0.45 μm PTFE filter로 시료용액을 여과하여 유도체 화합물을 제작하였으며, 측정 장비 및 분석 조건은 표 6과 같다(Table 6).
3. 결과 및 고찰
3.1. Graff “C” stain 염색에 의한 섬유 식별
종묘 정전 도배지 시료 24점의 섬유 식별을 위한 Graff “C” 염색 시험 결과, 시료 대부분의 섬유가 적갈색으로 반응하고, 섬유 측면에서 마디(cross-marking), 투명막(transparent membrane), 왜곡(dislocation) 등 전형적인 닥나무 인피섬유의 특징이 확인되었다(Figure 4). 또한 닥나무라고 추정되는 섬유 외에 다른 혼재된 섬유는 관찰되지 않았다.
조선을 개창하였을 때 태조가 궁궐을 짓는 일보다 서두른 공사가 종묘와 사직의 건설(Annals of the Joseon Dynasty, 1394)이었을 정도로 조선왕실에서 종묘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또한 초주지와 저주지는 각각 어람용 의궤, 분상용 의궤를 제작할 때 사용된 종이로써 궁궐 도배에 사용된 물품의 목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 의궤제작용 종이와 궁궐 도배에 사용된 종이는 동일(Kim et al., 2023)하다고 여겨진다. 도배에서 사용되는 초주지는 도배를 끝내는 정배지로, 저주지는 격식이 높은 공간의 재배지로 사용(Research society of YeonggeonUigwe, 2010b)되었다는 용도에 비추어 볼 때 ‘주지(注紙)’는 고급의 종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섬유 식별 결과 초본류 등 다른 재질이 혼합되지 않고 닥나무 인피섬유만을 사용한 점, 종묘가 위계 높은 건물인 점 등을 근거로 하였을 때 종묘 정전 반자 도배에 사용되었던 종이는 초주지(草注紙) 또는 저주지(楮注紙)라고 추정된다.
3.2. 평량(g/m2), 두께(mm), 밀도(g/cm3) 측정
종묘 도배지 시료 24점 중 평량과 두께를 측정할 만한 충분한 면적이 마련되지 않은 시료 ‘J15-4’를 제외한 23점의 시료를 대상으로 평량, 두께, 밀도를 구하였으며 구체적인 수치는 다음과 같다.
평량 측정 후 이상치로 판단되는 시료 ‘J13.1-1(113.0 g/m2)’, ‘J13.1-4(100.0 g/m2)’, ‘J17-1(107.0 g/m2)’, ‘J17-2(106.0 g/m2)’ 등 4점의 측정값을 제외한 시료 19점의 값을 평균한 결과, 평량 평균은 65.4 g/m2(StDev 22.1), 최소 평량은 25.0 g/m2(J4.2-2), 최대 평량은 96.0 g/m2(J13.1-2)로 확인되었다. 또한 20 g/m2미만∼100 g/m2이상의 평량 범위를 20 g/m2으로 나누어 집계 한 결과 최다 분포치는 40.0∼80.0 g/m2(31%)로 파악되었다(Figure 5).
두께 측정 후 이상치로 판단되는 시료 ‘J13.1-1(0.2744 mm)’의 측정값을 제외한 22점의 값을 평균한 결과, 두께 평균은 0.1523 mm(StDev 0.0447), 최소 두께는 0.0577 mm(J13.2-1), 최대 두께는 0.2389 mm(J15-1)로 확인되었다. 또한 0.05 mm미만∼0.25 mm이상의 두께 범위를 0.05 mm로 나누어 집계 한 결과 최다 분포치는 0.10∼0.20 mm로 파악되었다(Figure 6).
밀도 계산 후 이상치로 판단되는 시료 ‘J4.1-1(0.8739 g/cm3)’, ‘J4.2-2(0.1838 g/cm3)’ 등 2점의 측정값을 제외한 시료 21점의 밀도 값을 평균한 결과, 밀도 평균은 0.4428 g/cm3(StDev 0.1358), 최소 밀도는 0.2824 g/cm3(J13.2-2), 최대 밀도는 0.6928 g/cm3(J17-3)로 확인되었다. 또한 0.20 g/cm3미만∼0.60 g/cm3이상의 밀도 범위를 0.05 g/cm3로 나누어 집계한 결과 최다 분포치는 0.35∼0.50 g/m2으로 파악되었다(Figure 7).
3.3. 자외-가시광(UV-Vis) 분광광도분석
종묘 정전 도배지 24점 중 청색지로 확인된 9점을 대상으로 자외-가시광(UV-Vis) 분광광도분석을 실시하였으며 재실 별로 나누어 분석 결과를 나타내었다(Figure 8). 스펙트럼 검출 결과 9점의 시료 모두 420 nm에서 650 nm사이 완만한 피크가 관찰되며 650 nm∼700 nm부터 반사율의 급격한 상승을 나타낸다. 420 nm∼760 nm 범위의 완만하고 비대칭적인 곡선이 ‘indigo’의 UV-Vis 스펙트럼 특성임을 고려하였을 때(M.Leona et al., 2004) 해당 반사율의 변화는 쪽(natural indigo)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natural indigo’는 일반적으로 쪽으로 번역되는 천연 염료로써 전통적으로 청색을 염색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염료이며 염색 방법에 따라 생 쪽과 발효 쪽으로 나뉜다(Cultural Heritage Conservation Science Center, 2021). 본 연구에서 청색지 분석을 통해 나타난 스펙트럼 특성은 650 nm∼700 nm의 급격한 상승이나, 생 쪽은 UV-Vis 분석 시 600 nm에서 높은 인디고 피크를 보이는 특성이 있어 발효 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Shin et al., 2009). 따라서 종묘 정전 도배지에서 사용된 청색지의 발생원은 쪽 염료이며, 쪽을 발효시켜 염색하는 발효 쪽 염색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3.4.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 분석
종묘 정전 도배지 24점 중 UV-Vis 분석을 통해 청색 원료가 염료로 확인되고, 발색도가 높아 전처리 과정 중 염료 추출을 위한 충분한 양의 염색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청색지 7점을 대상으로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 분석을 실시하였으며, 분석 결과 및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Figure 9, Table 7).
5개의 시편에서 RT(Retention time) 49.5 부근에서 화합물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인디고(indigo)로 불리는 불용성 청색 색소 성분인 인디고틴(indigotin, 2,2’-Bis[2, 3-dihydro3-oxoindolyliden])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RT 59.18 부근에서 Lup-20(29)-en-3-ol, acetate, (3β)-, RT 64.3부근에서 4-tert-Octylphenol, TMS derivative, 등의 생물에서 추정되는 화합물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인디고 염료 성분으로는 인디고틴(indigotin), 인디루빈(indirubin), methyl anthranilate, 2-benzyl-indolin-3-one 등이 확인된 바 있으며(Poulin, 2018), 고대 직물의 청색과 녹색 직물의 염료 분석에서도 인디고틴과 인디루빈이 함께 검출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다(Liu et al., 2011; Ahmed et al., 2017). 또한 루판(Lupane) 유도체는 식물의 다양한 생리 활성을 나타나는 물질로 세포의 지연 소멸과정인 apoptosis를 통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미루어 종묘 정전 반자에서 사용된 청색지의 발색물질은 쪽이라고 판단된다.
4. 결 론
종묘 정전 반자를 덮고 있는 도배지 24점을 대상으로 섬유 식별 분석, 기초 물성 분석을 실시하였으며 24점 중 청염색지 9점을 대상으로 자외-가시광(UV-Vis) 분광분석, 7점을 대상으로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 분석을 수행하여 염료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층위 분리 결과 연화문, 만자(卍字)문의 청염색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종묘 정전이 역대 왕과 왕비의 제례를 지내는 공간인 것을 염두에 두었을 때 탄생과 장수만복 등의 의미를 담아 청능화지를 제작하여 도배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 섬유 식별 결과 종묘 정전 반자를 구성하는 도배지는 닥나무 인피섬유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종류의 섬유가 혼합되지 않은 점, 종묘가 매우 위계 높은 건물인 점 등을 근거로 하였을 때 도배지로 사용된 종이는 초주지(草注紙) 또는 저주지(楮注紙)로 추정된다.
3. 기초 물성 분석을 수행하여 평균한 결과 평량은 65.4 g/m2(StDev 22.1), 두께는 0.1523 mm(StDev 0.0447), 밀도는 0.4428 g/cm3(StDev 0.1358)로 확인된다.
4. 청염색지 대상 UV-Vis, GC 분석 결과 공통적으로 ‘natural indigo’에서 유래한 스펙트럼과 지시 성분이 검출되어, 조선 왕실에서 궁궐도배를 위한 청색지 염색에 사용된 염료는 쪽으로 판단된다.
종묘 정전 반자를 이루고 있던 도배지의 과학적 분석을 수행함으로써 조선시대 왕실에서 위계 높은 건물에 사용된 도배지의 특성과 구성 재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청색지 분석을 통해 조선 왕실에서 종이의 청염색을 위해 사용된 재료는 ‘쪽’염료인 것을 확인하여 청능화지 재현을 위한 재료 토대를 마련하였다. 본 연구결과가 왕실 도배지 재현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