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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Conserv. Sci > Volume 34(1); 2018 > Article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가옥’의 유래와 보존현황

초 록

초 록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의 유래와 보존현황에 관한 연구결과 건축연대는 1921년 10월 23일이 합당하며 일제 강점기 말기 최후 거주자는 그동안 Amendt 선교사로 알려져 왔으나, 1939년 작성된 Williams 선교사의 편지 및 새로운 증언에 의해 Alice Sharp 선교사가 1939년 은퇴시까지 사용하였던 건물로서 독신 여선교사들의 주거는 물론 여학교역할도 하였던 건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문화재의 명칭도 ‘공주 여선교사 기념관’ 으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 문화재의 내・외부 보존현황 조사 결과 건물 벽체의 기울기에는 이상이 없으나 내부 목재상태가 상당부분 열화되어 있어 안전진단 후 전체적인 보수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특히, 창호시설의 경우 본래의 상하 미닫이 창호로 복원할 필요가 있으며, 건물의 남서측 계단과 데크 및 우물의 원형복원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문화재의 하부지반의 안전성에 관한 지반 비파괴진단결과 이 선교유적이 2~5 m 두께의 불균등한 표토층 위에 건축되었으며 표토층과 그 하부의 풍화암과의 경계면이 지형경사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현상이 발견되 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기에 지반의 함수비가 증가하면 지반의 지지력이 저하되는 바 부등침하발생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집중호우가 발생한다면 산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본 건물 부지의 남서단 경계부에 석축시설을 설치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신속한 배수가 되도록 배수시설 설치가 필요하다.

ABSTRACT

The result of the study on the origin and preservation status of the ‘Gongju Junghakdong old missionary house’, the Registered Cultural Property No. 233, reveals that the building was approved on October 23, 1921, and missionary Alice H. Sharp was living in the building until her retirement from her missionary life of 39 years in Korea in 1939. In order to review internal and external preservation status of the building, condition of wood material, the composition of the window, the damage of the wall, and the leaning of the building were examined.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window facilities, it is necessary to restore it to the original upper and lower sliding window. As a result of investigation of the preservation status of the external facilities, it is necessary to restore the original shape of the staircase and a deck of the building on south western side and the well. In addition, the results of the non-destructive diagnosis of the ground revealed that the building was built on uneven surface layer of 2-5 m thickness and the boundary between the surface layer and the upper part of the weathered rock is inclined following geomorphology. This phenomenon shows that when the water content of the ground increases in the rainy season, the bearing capacity of the ground is lowered, and there is a possibility of uneven subsidence. Especially, landslides may occur in case of heavy rain. Therefore, it is desirable to install a masonry facility at the southwest boundary of the site, and it is recommended to install a drainage facility to ensure rapid drainage.

서 론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충 남 공주시 중학동 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주시 소재 기독교 선교유적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Figure 1). 건축의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11.2 m 높이이며, 건축면적 98.2 m2, 연면적 340.8 m2의 단일 건축 물이 3,357 m2의 대지 위에 놓여있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건축 설계 및 시공자는 ‘영명 100년 사’에 의하면 선교사들이 직접 건축하였는데, 1904년에 공 주선교부 책임자로 부임하여 1906년 3월에 순교한 샤프 (Robert Arthur Sharp) 목사가 설계하고 중국인 목수가 시 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근거는 불분명하다. 한편, 2007년 문화재청에 의해 간행된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 옥 기록화 조사 보고서’에서는 일반건축물대장에 기록된 허가일자를 기준으로 건축연대를 1921년 10월 23일로 밝 히고 있어, 자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 은 건축 연대의 불일치는 이 건물의 일제 강점기 말기 선교 사 추방시기에 최후 소유자가 누구 이었는지 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건물의 문화재로서의 명칭 또 한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본 논 문에서는 각종 기존의 자료와 새로 발견된 1939년에 작성 된 윌리엄스(Williams) 선교사의 편지 및 새로운 증언을 토 대로 본 선교유적의 유래에 대한 재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Figure 1.
The view of Yeongmyeong Dongsan in 1920s. The building on the left side of the photo is the present 'Gongju Junghakdong old missionary house' at a place where the location is relatively high. The central building is a tin-roof building built by missionary Reverand Sharp. (Photo Sourc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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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본 건물의 내・외부 보존현황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행한 바, 내부 목재상태, 창호의 구성, 벽체손상, 건축물 의 기울기 등에 대한 조사를 하였으며, 또한 외부 시설물에 대한 보존현황과 향후 대책 등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이 과 정에서 본 선교유적의 현 소유주의 증언을 다수 참고하였 음을 밝혀둔다. 아울러 본 건물의 하부지반의 안전성에 관 한 조사도 시행되었다. 건축물이나 문화재의 하부지반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탄성파 굴절법탐사와 전기비저항 탐사와 같은 비파괴 지구물리학적 방법들이 이용되어 왔다 (Jung et al., 1998; Suh, 1999; Suh et al., 2002). 탄성파 굴 절법탐사는 일반적으로 지반의 탄성파 전파속도를 비파괴 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으로서 이를 통하여 지반의 단단함 정도를 판단할 수 있고 지반상태의 수직적 및 수평적 변화 양상과 취약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지반의 전기비저 항 분포를 통하여 현재 지반의 수직적 및 수평적 변화양상 을 파악하고 이와 함께 취약한 부분을 인지해 낼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 사 가옥’의 하부 지반에 대하여 이러한 비파괴 지반탐사 방 법을 적용하여 취득된 자료를 통하여 지반의 구성현황과 취약 부분에 관한 향후 대책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건축연대와 문화재명칭에 관한 고찰

2.1. 기존 연구현황

충남 공주시 중학동 산 언덕에 위치한 등록문화재 제 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1896년 감리교 한국 선교부에서 감리교 한국선교의 전반을 관장하는 감리사 스 크랜턴(W.B. Sccranton) 선교사가 공주 ․ 수원구역의 겸직 선교 책임자로 임명 받은 이래 1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기 독교 개신교의 충청지역 선교역사의 중요한 선교유적이다. 이 유적은 1903년에 내한한 Sharp 선교사가 그 보다 3년 앞 서 1900년에 내한하여 이화학당 교사로서 선교활동을 하던 앨리스 해먼드(Alice Hammond) 선교사와 1903년 6월 결혼 후 1904년에 공주에 함께 파송되면서 명설(明設)학교를 개 설하고 190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당시 공주지역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조적조 건물로 알려져 왔다(Gongju Articles Publishing Committee, 2002).
그러나 이 건물의 건축연대와 어느 선교사의 집이었는 가를 놓고 의견이 나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감리신학대 학 이덕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이 건물을 아멘트(Charles C. Amendt, 한국명 안명도) 선교사의 사택이라 하고, 1940 년 Amendt 선교사의 귀국시 이 건물을 당시 공제의원을 운 영하던 양재순 씨에게 넘겼다고 기술하고 있다(Rhie, 2006). 또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2013년 발간한 ‘믿음의 흔 적을 찾아’에서 본 유적을 ‘아멘트기념관’으로 단정하면서 1917년부터 공주에서 활동한 Amendt 선교사가 살던 집으 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국의 기독교 역사유적 을 간결하게 기술하는 자료적 성격의 책으로서 특별한 근 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The Institute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2013).
한편, ‘영명 100년사’(Gongju Youngmyong Middle High School, 2007)에는 현재의 이 건축물이 1905년에 중국인 기술자들에 의해 시공된 건축물로서 Sharp 선교사 부부가 신혼으로 공주에 정착하여 선교 및 교육활동을 시작하면서 그해 가을 내내 그들의 집을 직접 지으면서 겪었던 이야기 를 적은 샤프 선교사의 부인 사애리시(Alice Sharp) 선교사 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2007년에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기록화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1914년 이후에 촬영한 공주 스테이션 사진에서 현재의 ‘공주 중학동 구 선 교사 가옥’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까지 현재의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이 없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1905년에 건축된 Sharp 선교사의 사택이 현재의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한, 1910년대의 Sharp 선교사의 사택은 1990년경에 철거된 건 물로 판단하였으며(Figure 2), 문화재청 기록화조사 과업대 상이었던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이 Sharp 선교사의 사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고 언급하고 있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그리고 각종 정황과 기록 을 통하여 볼 때,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이 Amendt 선교사의 사택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건축시기 는 Amendt가 공주에 정착하는 1920년을 전후한 시기로 판 단하였으며, 일반건축물 관리대장에 기록된 허가일자인 1921 년 10월 23일을 어느 정도 타당한 것으로 보았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그러나 이 주장 역시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이 Amendt 선교사가 그 곳에 거주 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다만 건축시 기를 1921년으로 보았을 때 Amendt 선교사가 1919년에 공 주에 왔기 때문에 Amendt 선교사와 관련된 사택으로 추정 하고 있는 것이다.
Figure 2.
Missionary Sharp’s office building demolished around 1990(left) and the current 'Gongju Junghakdong old missionary house' with decks and stairs on the left and right sides of the building(right). (Photo sourc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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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총독부 기록 ‘조선재류 구미인조사록’에 의하 면 Amendt 선교사는 1924년, 1925년, 1929년에 공주읍 대 화정(大和町) 3번지에서 부인과 함께 거주하였으며, 1937 년에는 부인과 자녀 3명과 함께 같은 장소인 공주읍 대화 정(大和町) 3번지에, 1938년에는 부인과 자녀 3명과 함께 경성부 신촌정(新村町) 57의 7번지에 거주하였음이 밝혀 졌다(Youngshin Academy Korean Studies Institute, 1981). 대화정은 현재의 중학동으로서(Kim, 2009) 현재 중학동 3 번지에는 현대연립주택이 위치하고 있다(Sungkyungnara, 2003). 그러므로 대화정 3번지 즉 현재의 중학동 3번지에 있던 Amendt 선교사의 집은 이미 민간에 매각되어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헐리고 난 후 현재 그 자리에는 현대연립주택이 건립되어 있다.

2.2. Williams 선교사의 편지

Williams 선교사는 1906년에 순교한 Sharp 선교사의 후 임으로 공주 선교기지에 파송되어 1940년 일제에 의해 추 방될 때까지 34년간 공주에서 영명학교 교장으로서 선교 사역을 하였던 미국 북감리회 소속 선교사이다. 그는 1940 년에 일제에 의해 한국에서 추방되어 다시 인도 선교사로 5년간 사역하다가 1945년 광복 후 맥아더 사령관의 초청으 로 미군정청 농업 고문으로 다시 한국에서 3년 여간 근무 하였다. 그가 1939년 9월 14일에 뉴욕에 있는 감리교해외 선교본부로 보낸 편지에서 당시 공주선교기지에 있던 4채 의 건물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각각이 Williams 선교사의 집, Amendt 선교사의 집, W.F.M.S.(해외여선교회) 집, 그리 고 Cable 가족 - Found 가족 - Sauer 가족이 차례로 거주하 였던 2층집이다. 여기에서 Amendt 선교사의 집이 Williams 선교사의 집 앞 언덕 아래에 있다고 언급함으로서 지형적 으로 낮은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Figure 3). 영명동산에서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건물 터 자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공주 중 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Rhie(2006),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2007) 등이 주장한 바 있는 Amendt 선교사 의 집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오히려 Williams 선교사의 1939.9.14.일자 편지에서 언급한 바 있는 4채의 건물 중에 서 W.F.M.S.집으로 표현된 건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곳이 사애리시(Alice Sharp) 선교사가 은퇴시까지 시무하 던 건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Figure 4 의 사진을 보면 Alice Sharp 선교사가 Swearer 선교사와 함 께 찍은 사진인데 사진의 배경이 현재의 선교유적의 남서 측면의 우측 창문 하단에 돌출된 석재 장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Figure 3.
A part of the letter from WIlliams in sabbatical at Richmond, the principal of the Yeongmyung school, to Cartwright, Methodist Overseas Mission Headquarters in New York, on September 14, 1939, referring to buildings of the Gongju mission station. (Letter source: Archives and Histo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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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Mrs. Sharp (right) and Mrs. Swearer (left), who had lost their husbands at the Gongju mission station and were then ministering to overseas missions agencies. The photo on the right is the current view of the southwestern side of the building,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taken by two female missionaries. The existence of the basement and the structure of the undercarriage of the window coincide with each other, and the way of building the bricks is different from that in the photo. It seems to be because of repairing later. (Photo Source: Archives and Histo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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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Alice Sharp 선교사 제자(박한나)의 증언

1990년경에 철거된 Sharp 선교사 사택으로 추정되는 건 물의 사진을 보면 지붕이 함석지붕으로 판단되는데(Figure 2), 이 사실은 1928년부터 영명학교에 다녔던 Alice Sharp 선교사의 제자 박한나 권사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다. 박한 나 권사의 가족은 충남 보령에 살았는데 사애리시 선교사 에 의해 온 가족이 전도되고 그의 부친이 영명학교 직원으 로 근무하게 됨에 따라 1928년 11세의 나이에 영명학교 보 통과 5학년에 입학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박한나 권사의 가 족들은 공주로 이사하여 3대에 걸친 온 가족이 Alice Sharp 선교사가 살던 함석집에서 살게 되었고 Alice Sharp 선교 사는 산위에 벽돌로 된 새집을 지어 옮기게 되었다고 필자 에게 증언한 바 있다(2015. 12. 29. 10:00 - 11:30, 인터뷰 장 소: Los Angeles, USA).
이 증언과 다른 자료들을 종합하면, 1905년에 지어졌던 Alice Sharp 선교사 사택은 함석지붕이었으며, Alice Sharp 선교사는 산위에 벽돌을 건축 재료로 하여 1928년 이전에 지어진 다른 건축물로 이사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영 명동산에서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의 위치보다 지형 고도가 높은 건축부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므로, 박한나 권사의 증언에 나오는 Alice Sharp 선교사가 이사한 ‘산위 에 벽돌로 지어진 집’ 이 현재의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 옥’ 으로 판단된다.

2.4. 문화재명칭 고찰

현재 이 건축물은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으로 명명되어 있어 그 명칭으로부터 선교사 의 주거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가옥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 러나 그 건물의 규모나 구조 등으로 볼 때 단순한 주거 목 적의 가옥이기 보다는 선교와 교육 등을 수행하였던 미국 감리교의 해외여선교회에서 파송한 독신 여선교사들의 주 거는 물론 여학교역할도 하였던 건물이었음을 박한나 권사 의 증언으로부터도 확인 할 수 있었다.
국내에 존재하는 선교유적중 선교사 사택에 관한 명칭 이 대부분 그곳에 거주하던 선교사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은데 비하여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거주하던 선교사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붙여진 임시적 성격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연구에서 이 건물이 Amendt 선교사의 집이었다고 추정한 결론과 달리 본 논문을 통하 여 새로 밝혀진 Williams 선교사의 편지에서 Amendt 선교 사의 집이 아니고 W.F.M.S.(해외여선교회) 여선교사들의 거처임이 밝혀졌고, 또한 Alice Sharp 선교사의 제자 박한나 권사의 증언에 따라 Alice Sharp 선교사가 살던 집을 비워 주고 새로 지어진 언덕위의 벽돌집으로 이사하였음을 밝힘 에 의해, 현재의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Alice Sharp 선교사를 비롯한 여선교사들이 일제의 여선교사 추 방정책에 의해 한국을 떠날 때 까지 거주하며 사역을 하였 던 건물로 밝혀졌다.
W.F.M.S.(해외여선교회)는 1938년 5월에 ‘FIFTY YEARS OF LIGHT’이라는 50년사를 발간하는데, 여기에 공주지역 에 관한 선교보고는 Alice Sharp 선교사가 작성하였고, 또한 공주지역 공중보건사업 보고는 마렌 보딩(Maren Bording) 선교사가 작성하였다(Missionaries of the Woman’s Foreign Missi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38).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Williams 선교사가 언급했던 W.F.M.S. 집에 Alice Sharp 선교사와 Bording 선교사가 함께 거주하 면서 W.F.M.S.(해외여선교회) 사역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현재의 불분명한 상태의 명칭인 ‘공주 중학 동 구 선교사 가옥’을 ‘공주여선교사 기념관’으로 변경하 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고 판단된다.

보존 현황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내부 의 보존상태에 관하여 육안조사를 시행하였다. 내부의 벽 체 마감의 경우 부분적으로 벽지로 마감하고 있으나 벽지 를 제거하고 벽체의 원형을 복원하여야 할 것이다. 건물 내 부의 계단시설이나 각 방의 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목재들 이 노후하여 일부는 갈라지거나 내려앉는 등 부분적인 보 수가 필수적인 상황이라 하겠다(Figure 5). 향후 이 건축물 의 용도에 따라 보수정도가 달라져야 하겠지만, 전시공간 으로의 시설 사용을 계획한다면 한 번에 수백 명의 관람객 이 드나들 경우를 가정할 때 소규모의 보수정도로는 불가 능하며 본격적인 안전진단을 시행한 후에 보수 방안을 수 립할 필요가 있다.
Figure 5.
Cracks in the wood stairs inside the buliding( above) and the aging of wood floor in second floor(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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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건축물의 창호시설은 과거에 시행된 보수공사에서 본래 상하 미닫이 형태를 전후 여닫이 형태로 바꾸었다고 건물 소유주는 언급하고 있다. 원래의 창호는 창문이 위아 래 두 매로 되어 있었으며, 창호의 양측 벽속에 추를 이용 한 균형 장치를 설치하여 아래 창을 원하는 위치에 자유롭 게 멈출 수 있게 시설이 되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러한 상하 미닫이 형태의 창호는 청주의 선교유적에서 현 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향후 복원단계에서 청주 선교기지 의 창호장치를 모델로 하여 복원공사를 시행하여야 할 것 으로 판단된다.
본 건축물의 외부 시설에 관하여 조사를 시행한 바, 외 부벽체의 경우 벽돌의 열화가 진행되어 취약한 상태가 다 수 발견되고 있어 노후 벽돌에 대한 교체가 필요한 상태이 다(Figure 6). 건축물이 위치하고 있는 지형특성상 건물의 좌측으로 경사질 가능성이 예측되어 건물의 좌측과 우측 벽에 대한 벽체기울기를 광파측량기를 이용하여 측정한 결 과 다행히도 건물의 좌우측 벽이 기울어지지는 않은 상태 로 오차 범위내에서 수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 었다(Table 1). 1920년대에 촬영된 본 건물의 사진을 보면 건물의 좌우측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Figure 2), 현재는 건물 우(북동)측에만 계단이 남아 있어 향후 복원시에는 건물의 좌(남서)측 계단과 데크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7). 또한, 본 건물 소유주에 의하면 우(북동)측 계단 뒤 편에 우물이 존재하는데, 현재는 안전상 우물덮개를 설치 하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외관상 우물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상황인 바, 향후 복구시에는 이 우물의 복원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Figure 6.
The deterioration state of some bricks in upper part(above) and lower part(below) of the outsid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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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Space information for measuring the slope of the southwest and northeast side walls of the Registered Cultural Property No. 233 ‘Gongju Junghakdong old missionary house’
Northeast wall
Classification H(m)* V(m)* D(°)**
1 7.723 4.794 0.000
2 7.723 1.712 0.003
3 7.728 -1.261 0.005
Southwest wall
Classification H(m) V(m) D(°)
1 10.046 6.658 0.000
2 10.040 3.410 0.001
3 10.045 0.996 -0.001

* Horizontal distance(H) to the wall surface from at any arbitrary height(V) in a straight line is maximum 5 mm for the northeast side and 6 mm for the southwest side. Those differences fall within the error range(+/- 3 mm) of the instrument.

** Horizontal angle(D) between first measurement and 2nd and 3rd measurements is negligible due to slight dislocation of reflector by irregularities of the wall.

건물 외곽 시설로는 출입구 좌측에 위치하는 옛 화장실 시설, 기도굴, 및 계단형 관람대 등이 있는데(Figure 7), 계 단형 관람대는 2016년에 공주시측에서 방문객들의 관람시 설 겸 산사태방지 목적으로 설치한 시설이다. 옛 화장실 시 설은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1930년 영명학교 전경사진에 서도 확인되는 바, 그 역사가 적어도 88년 이상으로 판단되 며 이 또한 본 선교유적의 일부로서 복원하여 방문객을 위 한 편의시설로 활용함이 마땅하다 하겠다. 기도굴의 경우 현재 출입문이 부식되고 그 내부도 정비되지 않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본 유적이 선교유적임을 감안할 때 복 원하여 본래의 목적대로 활용토록 함이 타당할 것이다.
Figure 7.
Status of the old toilet facilities and prayer cave on the left side of ent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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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유적의 지반안정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현 재 구릉의 선단부에 위치하여 삼면이 경사면으로 둘러 싸 여 있는 상태이다. 더욱이 선교유적의 후면은 도로공사 관 계로 인하여 인위적인 절개면으로 되어 있다. 도로에 인접 한 사면에 대해서는 철근콘크리트로 옹벽처리되어 있어 안 정감이 있으나 그 상부인 지반에 대한 절개부분은 옹벽처 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기에는 선교유 적 지반으로부터의 토양유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궁극적으 로 지반에 대한 위험성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선교유적 부지에 대한 지반 안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2015년 5월 22일에 인근 지반에 대한 비파괴탐사를 시행하 였다. 지반의 지지력을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 는 탄성파굴절법 탐사(Seismic refraction method)와 또한 우기에 지반의 함수여부에 따라 지반 약화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전기비저항탐사(Electrical resistivity method)를 3 개 측선(Figure 8의 ①~③)에서 수행하였다(Figure 8). 측 선 L-1, L-2 및 L-3에 대하여 지오폰 간격을 1 m로 하여 굴 절법탄성파탐사를 시행하였으며, 전기비저항 측정은 전극 간의 간격을 1 m로 한 Dipole-dipole 전극배열법을 이용하 여 수행되었다.
Figure 8.
Survey lines conducted in the arrow direction around the missionary house(left), seismic refraction survey(middle), and electric resistivity survey with Dipole-dipole electrode arra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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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선 L-1 의 탄성파속도 분포를 보면 측선의 위치 12 m 지점을 경계로 탄성파속도 700 m/s 등치선의 깊이 변화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현재 가옥이 위치하고 있는 부분의 지반이 마당으로 활용되는 지반보다 취약하게 나타 나고 있으며 풍화암 상부 경계면이 주택의 정문 좌측으로 지하 4 m 까지 경사지게 깊어지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측 선 L-1 의 비저항분포단면도에서도 가옥이 위치한 지반이 마당부위보다 저비저항을 보이고 있어 탄성파속도단면도 와 일치되는 결과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탐사측선 10~12 m 구간에 저비저항대가 지하 5 m 까지 깊숙이 분포하고 있 어 취약한 부분이 되고 있다(Figure 9).
Figure 9.
Photo of the missionary house on its location along Line L-1(above) with cross sections of seismic velocity in m/sec(middle) and electrical resistivity in ohm-m (below) with horizontal axis in meter along Line 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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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가옥 후면부에서 측정된 측선 L-2의 탄성파속도 단면도를 보면 측선의 5 m 지점을 경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측선의 5 m 지점 직하부에서 탄성파속 도 500 m/s 등치선이 급격히 깊어지고 있으며, 풍화암반의 상부에 해당하는 700 m/s 등치선도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전기비저항 단면도에서도 측선의 중앙부로부터 저비 저항대가 측선의 후반부 즉 지형경사방향으로 깊어지는 특 성을 보이고 있어 탄성파속도 단면도상에 나타나는 지반 특성과 일치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Figure 10). 즉, 선교 사가옥이 일부는 상대적으로 단단한 지반위에 놓여 있고 또 다른 일부분은 무른 지반위에 놓여 있음을 나타내고 있 다. 건조한 시기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집중호우가 내리 는 경우에는 측선의 후반부의 지반의 함수비가 높아지게 되고 이 부분의 지반의 지지력은 약화되어 건축물이 부등 침하의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부 등침하가 발생할 경우 본 건축물은 철근콘크리트건물이 아 니고 조적식 가옥이기 때문에 그 위험도가 매우 높다고 판 단된다.
Figure 10.
Photo of the missionary house on its location along Line L-2(above) with cross sections of seismic velocity in m/sec(middle) and electrical resistivity in ohm-m (below) with horizontal axis in meter along Line 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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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선 L-3는 선교사가옥의 우측면을 따라 설치된 측선으 로서 선교사 가옥 마당부분에 해당하는 측선의 전반부 지 반은 탄성파속도 500 m/s 등치선이 지표면까지 위치하여 비교적 안정된 지반이지만, 선교사 가옥이 위치한 측선의 후반부는 풍화토의 깊이가 지하 4~5 m 깊이 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그 경사가 측선의 후반부쪽으로 즉 지형 경사면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지반안정에 위해요소가 되고 있다. 비저항단면도상에서 측선의 10 m 부근에서 발견되 는 급격한 비저항 변화는 측선 말단부에 있는 지형경사면 영향으로 해석된다(Figure 11).
Figure 11.
Building site of the missionary house on its location along Line L-3(above) with cross sections of seismic velocity in m/sec(middle) and electrical resistivity in ohm-m (below) with horizontal axis in meter along Line 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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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부지에 대한 지반 안정 상 태를 파악하기 위한 비파괴 지반탐사를 시행한 결과 선교 사가옥은 2~5 m 두께의 불균등한 풍화토 위에 건축된 것으 로 파악된다. 그 하부에 존재하는 풍화암의 상부면은 지하 에서 지형경사면을 따라 기울고 있는 것이 측선 L-1, L-2, L-3에서 확인되고 있다(Figure 9~11). 이러한 현상은 지반 이 건조할 때에는 영향이 없지만 우기에 집중호우가 발생 한다면 산사태위험까지도 예측되고 있다. 또한 집중호우가 아니더라도 지반의 함수비가 증가하면 지반의 지지력이 저 하되는 바, 지반하부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부등침하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선교유적의 삼면에 존재하는 경사면에 대한 보 강과 또한 선교유적의 마당경계부에 형성된 절개지 및 도 로부분으로의 산사태예방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 된다. 또한 지반의 토양유실을 막기 위하여 우기시 선교유 적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빗물을 안전하게 부지 밖으로 유출 되도록 빗물유출시설을 하여야 한다.

결 론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의 건 축연대 및 일제강점기 후반부 선교사들의 소유관계 등 그 유래에 있어서 자료와 연구자간에 서로 상이하게 회자되고 있는 바, 건축연대는 건축물 대장에 기재된 1921년 10월 23일이 합당하며 일제 강점기 말기에 최후 거주자는 그동 안 Amendt 선교사로 알려져 왔으나, 본 연구를 통하여 새 로 발견된 1939년에 작성한 Williams 선교사의 편지 및 새 로운 증언을 토대로 Alice Sharp 선교사가 이곳에서 1939 년 은퇴시까지 선교업무를 감당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건물의 규모나 구조 등으로 볼 때 단순한 주거 목적의 가옥 이었다기 보다는 선교와 교육 등을 수행하였던 곳으로 미 국 감리교의 해외여선교회에서 파송한 독신 여선교사들의 주거는 물론 여학교역할도 하였던 건물로 밝혀졌다. 그러 므로 이 건물의 명칭을 ‘공주여선교사 기념관’ 으로 변경하 는 것이 그 건물의 특성과 용도에 비추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본 건물의 내 ․ 외부 보존현황 파악을 위하여 내부 목재 상태, 창호의 구성, 벽체손상, 건물의 기울기 등에 대한 조 사를 시행한 결과 건물의 기울어짐 현상 등은 없으나 내부 목재상태는 상당부분 열화되어 있어 안전진단 후 전체적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외부 시설물에 대한 보존현황과 향후 대책 등에 관하여 검토한 결과 본 건물의 남서측의 계 단 및 데크, 북동측에 존재하던 우물 등에 관한 원형복원이 필요하다. 또한 1930년에 촬영한 사진에도 등장하는 옛 화 장실 시설과 기도굴의 경우에도 지붕개량 등 필요한 보수 를 통하여 방문객들의 편의시설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본 건물의 하부지반의 안전성 파악을 위하여 탄성 파굴절법탐사와 전기비저항탐사 등의 비파괴방법을 통하 여 진단한 결과 이 선교유적이 2~5 m 두께의 풍화토에 해 당하는 표토층 위에 건축되었으며 건물 하부의 지반이 불 균등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표토층의 하부경계면이 지 형경사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 러한 현상은 지반이 건조할 때에는 영향이 없지만 우기에 집중호우가 발생한다면 산사태위험이 예측되고 있다. 또한 집중호우가 아니더라도 지반의 함수비가 증가하면 지반의 지지력이 저하되는 바, 지반하부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부 등침하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건물 부지의 남서단 경계부에 석축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신속한 배수가 되도록 배수시설 설치가 필요하다.

사 사

이 연구는 공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지원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현장조사에 협조하여주신 등록문화재 제 233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소유주와 논문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익명의 심사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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