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우리나라의 사찰이나 궁궐 등 고건축의 단청과 벽화, 불화 등 중세 이전 문화유산의 채색에는 전통적으로 무기질 광물안료가 사용되었다(
Gwak, 2012;
Lee et al., 2017). 천연광물을 이용해 안료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색상의 광물을 분쇄한 후 원하는 입자를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Go et al., 2015). 일반적으로 광물을 분쇄하는 경우 다양한 크기의 입자들이 생성되는데,이 광물입자는 크기가 클수록 선명하고 강한 색을 내며 크기가 작아질수록 밝고 연한 색을 띤다(
Lee, 2014). 다양한 크기의 입자들 중에서 원하는 크기의 입자를 선별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수비법으로 물속에서 입자의 크기에 따른 침강속도 차를 이용해 입자를 선별하는 방법이다(
Kang et al., 2017). 일반적으로 수비법에 의한 안료제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미세한 안료입자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침전시간을 길게 가져가야 하고, 일정량 이상의 안료제조를 위해서는 많은 반복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비법의 이런 단점들을 보완하여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는 안료 제조방법으로 연표법(硏漂法)이 있다(
Jeong, 2001). 연표법은 대나무통과 아교수를 이용해 안료 입자를 선별하는 방법이다. 대나무통에 분쇄한 안료와 아교수를 혼합하고 이를 건조하면 대나무통 안의 안료를 선택적으로 선별하여 안료를 제조할 수 있다. 연표법은 전통적인 안료제조 방법 중 하나이지만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실제 안료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안료 제법 중 하나인 연표법을 적용하여 안료를 제조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연표법을 통한 안료제조 과정을 규명하고자 한다.
2. 연구재료 및 방법
2.1. 연구재료
2.1.1. 안료광물
연구에 사용된 안료 광물은 주사(cinnabar), 석청(azurite), 석록(malachite)이다. 모두 국내 업체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산지는 동남아지역이다. 대상 안료광물은 Jaw crusher(BB50, Retsch, DEU)를 이용해 조분쇄 하고 Mortar mill(BB 50, Retsch, DEU)을 이용해 미분쇄하였다.
2.1.2. 아교
아교수 제조를 위해 사용된 아교는 일본 나카가와사의 알아교이다. 아교수가 상온에서 겔(gel) 상태로 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액상으로 유지되는 농도는 10% 이하이다. 따라서 가장 높은 농도로 10%를 설정하고 중간농도 및 낮은 농도로 각각 5%와 1%의 아교수 농도를 설정하였다. 75℃ 중탕으로 10% 아교수를 만들고 이를 증류수로 희석해서 5%, 1%의 아교수를 각각 제조하였다.
2.1.3. 대나무
국내산 대나무 중 지름 5 cm 내외의 대나무를 선별하였다. 대나무 마디를 중심으로 위쪽으로 약 10 cm, 아래쪽으로 약 2 cm 크기로 절단한 후, 마디 위쪽은 벌어지지 않도록 묶어주고, 아래쪽은 깎아서 세 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2.2. 연구방법
2.2.1. 안료제조
대나무통에 안료 약 200 g과 아교수 100 ml를 넣고 잘 혼합해 준다. 안료는 주사, 석청, 석록 3종이고, 아교수는 1%, 5%, 10%를 각각 적용하였다. 약 1시간 동안 상온에서 정치한 후 80℃ 항온수조(BW-20G, Jeio Tech, KOR)에서 건조하였다. 대나무통 안의 물이 모두 증발하여 제거된 후 대나무통을 꺼내고 상온에서 식힌 후 대나무를 가르고 안료를 층위별로 선별하였다. 천공개물(天工開物)과 같은 고문헌 자료에 따르면 주사, 석청, 석록과 같은 암석성 안료의 경우 입자의 크기 및 색상에 따라 4종으로 분류한다.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안료 층위를 4단계로 분류하여 각각 4종의 안료를 제조하였다.
2.2.2. 아교수 점도
연표법에 의한 안료제조 과정은 정치단계(상온, 20℃)와 건조단계(80℃)로 구분된다. 제조 과정에서 아교수의 점도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상온(20℃) 및 80℃에서 아교수의 점도를 측정하였다. 점도측정은 모세관 점도계(Cannon Fenske Routine Viscometer, Schott, DEU)를 이용하였다. 모세관점도계에 아교수를 채우고 항온수조 안에서 약 15분 이상 정치한 후 점도를 측정하였다.
2.2.3. 아교제거
아교수를 이용해 안료를 제조하는 경우, 제조된 안료에서 아교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이 과정을 출교(出膠)라고 하는데, 끓는 물을 붓고 혼합한 다음 일정시간 동안 정치하고, 상등액이 맑아지면 물을 따라내는 과정을 통해 아교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본 연구에서는 제조 안료로부터 아교를 제거하기 위해 이 과정을 3회 반복 수행하였다.
2.2.4. 침강속도 산출
아교수의 농도에 따른 안료 입자의 침강속도 산출을 위해 스토크스의 법칙(Stokes’ law)를 적용하였다. 스토크스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Vs = 침강속도
u = 유체의 점성도
ps = 입자의 밀도
p = 유체의 밀도
D = 입자의 지름
g = 중력가속도
3. 연구결과 및 고찰
연표법을 적용하여 주사, 석청, 석록 안료를 제조하였다. 아교수 농도를 1%, 5%, 10%로 구분하여 적용하고, 80℃에서 건조한 후 대나무통을 가르고 안료의 층위 형성 상태를 확인하였다. 또한, 전체 안료층을 4단계로 구분하여 안료를 선별 제조하였다.
3.1. 아교수 농도에 따른 안료의 제조 특성
3.1.1. 주사
대나무통을 가르고 형성된 주사안료의 층위를 확인하였다. 주사 안료의 경우 입자의 크기 및 색상에 따라 주화(朱華), 삼주(三朱), 이주(二朱), 심주(深朱)로 구분하는데, 층위의 가장 위쪽이 주화에 해당한다. 주화(朱華)는 주표(朱標) 혹은 황표(黃標)라고도 하는데, 1%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에는 거의 관찰되지 않으며, 아교수 농도가 증가할수록 그 두께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Figure 1). 전체적으로 아교수의 농도가 증가할수록 층위의 형태가 분명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10% 아교수를 적용한 경우 입자의 크기가 비교적 크고 진한 색상을 가지는 이주(二朱)와 심주(深朱)의 구분이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성된 층위에서 부분적으로 선별하여 제조한 주사안료는 아래쪽 안료일수록 진한 색상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Figure 2). 아교수 농도에 따라서는 전체적으로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지만 심주(深朱)에 해당하는 안료의 경우, 10% 아교수를 사용했을 때 작은 입자들이 혼합되어 있는 비율이 적고, 상대적으로 더 진한 색상을 띠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3.1.2. 석청
석청의 형성된 층위를 분석한 결과, 주사와 마찬가지로 아교수의 농도가 증가할수록 층위가 뚜렷하게 나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Figure 3). 석청은 입자의 크기와 색상에 따라 청화(靑華), 삼청(三靑), 이청(二靑), 대청(大靑)으로 구분하는데, 청화(靑華)에 해당하는 가장 위쪽 층위는 1%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는 거의 생성되지 않았고, 아교수의 농도가 증가할수록 그 두께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쪽 층위의 경우도 1%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에 비해 5%와 10%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 보다 뚜렷하게 층위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층위에서 선별하여 제조한 석청안료는 전체적으로 아래쪽 층위에서 제조한 안료일수록 진한 색상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보다 5%와 10%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 층위에 따른 색상의 차이가 보다 뚜렷하게 들어나는 차이를 보였다(
Figure 4).
3.1.3. 석록
석록은 입자의 크기 및 색상에 따라 녹화(綠華), 삼록(三綠), 이록(二綠), 대록(大綠)으로 구분한다. 아교수 농도에 따른 석록의 층위를 분석한 결과, 1%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에는 맨 위쪽의 녹화(綠華)에 해당하는 층위가 거의 생성되지 않았으며, 10%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 가장 두꺼운 층위를 보였다(
Figure 5). 삼록(三綠)에 해당하는 두 번째 층위의 경우 아교수 농도에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유사하게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아래 층위의 경우는 사용된 아교수의 농도가 증가할수록 보다 뚜렷하게 층위가 형성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각 층위에서 선별하여 제조한 석록안료는 아래쪽 층위의 안료일수록 진한 색상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Figure 6). 아교수의 농도에 따라서는 전체적으로 유사한 경향을 보였지만, 10% 아교수를 사용한 경우 특히 이록(二綠)과 대록(大綠)에 해당하는 층위의 구분이 뚜렷하였다.
3.2. 아교수의 영향
3.2.1. 온도에 따른 아교수의 점도변화
연표법에 의한 안료제조는 크게 2단계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단계는 분쇄한 재료광물과 아교수를 혼합한 후 약 1시간 정도 정치하는 단계인데, 이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큰 입자들의 침전이 이루어진다. 2단계는 건조단계로 기본적으로는 가열을 통해 물을 증발시키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비교적 작은 입자들의 침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각 단계에서 입자의 침전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교수의 농도이다. 아교수의 농도에 따라 점성도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입자의 침전속도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Kang et al., 2016). 1단계에서 정치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은 상온상태이기 때문에 아교수에 의해 상대적으로 높은 점성도가 유지되고, 이에 따라 안료 입자의 침강속도는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크기가 비교적 큰 입자의 경우 침전이 이루어지지만 작은 입자의 경우 거의 침전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반면 2단계 건조단계에서는 가열로 인해 온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아교수의 점성도의 감소로 인해 입자의 침강속도가 증가한다. 따라서 비교적 작은 입자들의 침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Figure 7).
3.2.2. 아교수 농도에 따른 침강속도
20℃에서 1% 아교수의 점성도는 약 1.4 mm
2/sec이지만 10% 아교수의 점성도는 약 15.9 mm
2/sec이다. 10% 아교수의 점성도는 1% 아교수의 약 11.5배에 해당하는데, 이는 10% 아교수에서 광물입자의 침강속도가 11.5배 만큼 감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60 μm 주사안료 입자의 경우, 1% 아교수에서는 10.1 mm/sec의 침강속도를 갖지만 10% 아교수에서는 0.9 mm/sec로 감소한다(
Figure 8). 입자의 침강속도가 빠르면 입자크기에 따른 층위의 형성이 어렵고, 입자들이 혼재되어 침전될 가능이 높다. 따라서 10% 아교수를 적용하여 입자의 침강속도를 감소시키는 것이 안료입자의 층위형성에 보다 적합한 것으로 판단된다.
4. 결 론
연표법을 적용하여 주사, 석청, 석록 안료를 제조하였다. 안료 제조 시 1%, 5%, 10%의 아교수를 적용하여 아교수 농도가 안료의 층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주화, 청화, 녹화 안료는 1% 아교수를 사용했을 때는 거의 생성되지 않았으며, 아교수의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그 두께가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교수의 농도 즉, 아교의 양에 따라 형성층의 두께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판단된다.
2. 안료의 층위와 제조된 안료의 색상을 통해 볼 때, 상대적으로 미세한 입자의 안료는 아교수의 농도에 상관없이 거의 유사한 경향을 보이지만 비교적 큰 입자로 이루어진 안료층에서는 아교수의 농도가 증가할수록 층위의 구분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3. 연표법에 의한 안료제조 과정은 크게 혼합 후 정치하는 단계와 건조 단계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정치 단계에서 비교적 큰 입자의 층위형성이 이루어지고, 건조단계에서 미세입자의 층위가 형성된다.
4. 입자의 침전에 의한 층위형성 시, 입자의 크기에 따라 뚜렷하게 층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입자의 침강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 유리하므로 이를 위해 10% 고농도의 아교수를 적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사 사
본 연구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조사연구(R&D)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Figure 1.
Stratified forms of cinnabar according to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GS).
Figure 2.
Cinnabar pigments made according to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and stratification.
Figure 3.
Stratified forms of azurite according to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Figure 4.
Azurite pigments made according to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and stratification.
Figure 5.
Stratified forms of malachite according to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Figure 6.
Malachite pigments made according to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and stratification.
Figure 7.
Viscosity according to the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at 20℃ and 80℃.
Figure 8.
Sedimentation velocity of cinnabar particles according to the concentration of glue solution at 20℃.
REFERENCES
Go, I.H., Jeong, Y.H., Park, J.H., Jeong, L.S. and Jo, A.H., 2015, The characteristics of particle size in natural mineral pigment for azurite raw material. Journal of Conservation Science, 31(4), 331–339. (in Korean with English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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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J.M., 2001, The color and paint of the Korean painting, Hakgojae, Seoul, 1–260 p. (in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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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J., Ahn, J.Y., Yoo, Y.M., Lee, K.M. and Han, M.S., 2017, Diagnosis of coloration status and scientific analysis for pigments to used large Buddhist painting (gwaebultaeng) in Tongdosa temple. Journal of Conservation Science, 33(6), 431–442. (in Korean with English abstract)
Lee, J.Y., 2014, A study on the properties of natural inorganic pigments using scientific analysis methods, Ph.D. dissertation, Yong-in University, Yongin, 2–3 p. (in Korean with English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