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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Conserv. Sci > Volume 36(6); 2020 > Article
융합적 연구를 위한 도자기 보존과학과 도자사학 언어의 접목: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 분석 보고서』를 중심으로

초 록

한국에서는 1960-70년대를 거치며 도자기라는 유물을 역사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이 등장하여 오늘날 각각 도자사와 보존과학이라고 불리는 분과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두 분과는 도자기라는 같은 대상을 연구함에도 독자적인 연구 스타일을 형성한 결과 서로의 연구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고는 백자를 분석한 사례들에 초점을 맞추어,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와 이 보고서의 분석을 담당한 보존과학자의 다른 연구를 역사적으로 추적함으로써 두 분과가 가진 연구의 특징과 역사를 살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도자기를 연구하는 두 분과의 설명 스타일이 지닌 특징과 차이는 무엇일까? 둘째, 두 분과의 소통이 점차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셋째, 두 분과가 다시 소통할 수 있는 교역지대가 있다면 그 가능 조건과 산물은 무엇일까? 본고에서는 도자기를 분석하는 두 분과의 설명 스타일을 언어적 관점에서 분석한 뒤, 보존과학이 도자사와 공통언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분석기법이 세분화되고 정량화됨에 따라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과학 데이터가 점차 도자사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두 분과가 공유한 공통언어의 존재는 보존과학 데이터가 새로이 해석되어 다시 도자사 연구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ABSTRACT

During the 1960-1970s, a group of ceramic conservation scientists and ceramic historians in South Korea came together and established their own disciplines. While the two disciplines share the same ceramics as the subjects of their research, there has been little interaction between the two as their research outputs are articulated in remarkably different languages. This paper aims to address the following questions by using a case study that focuses on the research on white porcelains centered on the project of Gyeonggi Museum and a series of studies conducted by one of the museum’s project research teams. First,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and differences between the explanation styles of the two disciplines that share the same research subjects of ceramics? Second, why has the communication between the two disciplines become difficult? Third, if there can be a trading zone wherein the two disciplines would be able to communicate again, what would be its epistemic conditions? The focus of this paper is the relationship between scientific data and ordinary language, which the two disciplines have shared from their inception. By analyzing the relationship, I first argue that, as the analytical techniques of conservation science have become more developed, conservation science’s data have gradually lost its relevance in ceramic history, in spite of a shared common language between them; Second, I argue that by recovering the import of shared language again, the scientific data can be placed in a different practical context, providing novel interpretations that are relevant and often consequential to ceramic history.

1. 서 론

한국에서는 1970년대를 거치며 재료공학이나 분석화학에서 사용되는 최신 분석기기와 기법들로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도편을 분석하는 과학자들이 등장하였다. 이 때부터 도자기 유물을 가시범위를 벗어난 영역에서 물리화학적 기법으로 정밀하게 분석하는 연구가 가능해졌다.1) 한편,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1960년대에는 ‘고고미술동인회’의 발족을 계기로 도자기를 둘러싼 역사 연구, 즉 도자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Kim, 1990; Kang, 1996).2) 이처럼 ‘도자기’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약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다른 연구 방법론에 기초하여 형성되기 시작한 일군의 연구들은 오늘날 각각 ‘보존과학’, ‘도자사’라는 분과로 자리를 잡았다.
‘보존과학자’라 불리는 과학자들의 연구 영역은 문화재를 분석하여 그 제작 연대를 추정하는 일에서부터 물리적으로 손상된 부위를 보수⋅수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다룰 보존과학자는 도자기 ‘분석’ 전문가들로서 이들은 도자기 유물을 대상으로 “과학적 장비와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문화재의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제작 기법을 연구하며, 보존처리를 위한 재료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이들을 가리킨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atage, 2012). 즉, 도자기 ‘분석’ 전문가들은 주로 태토와 유약의 화학성분을 분석함으로써 도자기의 산지를 유추하거나, 도자기의 가시적 특징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제작기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3)
분석 보존과학 분과는 1980년대부터 각 대학 내에 국내 재료공학부, 화학부 전공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재생산 가능한 연구 시스템을 정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4) 이 시기를 기점으로 증가하던 보존과학 연구는 1990년대 이후부터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물들에 함께 수록되기 시작했다(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1993;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the Gyeonggi Museum, 2000). 이전까지 『세종실록』 「지리지」와 같은 역사적 사료에 기초한 고고학적⋅도자사적 해석이 전부였던 발굴조사 보고서에 도편을 물리화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경기도 일대 요지의 발굴조사와 해저인양 도자기 발굴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보고서의 과학 분석 내용에 도자기의 제작 환경이나 기법 등을 유추하는 일부 ‘융합적’ 해석이 시도되기도 했다(The Gyeonggi Museum, 2004; Gyeonggi Cultural Heritage Research Institute, Yongin City and Yongin Culture Center, 2016; The National Maritime Cultural Heritage Museum and Jeollabuk-do, 2004; The National Maritime Cultural Heritage Museum, 2003;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aritime Cultural Heritage, 2009).
그러나 이러한 융합적 해석의 실상은 상이한 연구 스타일의 단순 병치에 가깝다. 가령 가마터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에 수록되는 과학 논문은 대부분 분석 보존과학자의 연구인데 여기서 보존과학자들의 분석은 같은 도자기를 검토 대상으로 삼는 도자사학자의 연구와 ‘동시에’ 생산됨에도 보고서의 후반부에 1-2편정도 곁들여지는 형태로 수록될 뿐 도자사 연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융합을 시도한 흔적이 결론이나 고찰 부분에서 일부 드러나기는 하나 대체로 각 분야의 데이터가 한 보고서에서 병렬적으로 수록돼 있을 뿐 아직 서로의 분석과 해석에 주는 직접적 영향은 거의 없는 한계를 보인다.
이처럼 도자기라는 동일한 연구 대상을 공유함에도 도자사와 보존과학 두 분과의 연구가 서로의 연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충분한 훈련을 필요로 하는 두 분과의 방법론의 차이가 서로의 연구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본고는 두 분과가 가진 연구의 특징과 차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것이다. 첫째, 도자기를 연구하는 두 분과의 설명 스타일이 지닌 특징은 무엇인가? 둘째, 두 분과의 소통이 점차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두 분과가 다시 소통할 수 있는 매개 지점이 있다면 그 형성 조건과 산물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과학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분석하는 과학학의 방법론과 사례연구(case study) 기법을 활용한다. 이 점에서 본 연구는 특정 연구 분야의 현황을 개괄하는 일반적인 리뷰 논문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특정 사례 또는 인물의 연구를 시기별로 따라감으로써 도자기라는 동일한 연구 대상을 놓고 연구하는 두 분야의 소통 부재가 왜 발생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소통 부재를 극복하려 한다면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본고는 백자를 분석한 연구 논문들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여 보존과학과 도자사 연구의 특징을 정리한 후(2절),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와 이 보고서의 분석과 해석을 담당한 보존과학자(이영은)와 도자사학자의 협업 연구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여(3절) 두 분과의 연구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드러내려 한다(4절).5)
보존과학과 도자사 연구의 접점을 찾으려는 본 연구가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이하 『경기도 보고서』)에 담긴 연구 스타일의 역사적 추이에 초점을 맞춘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기도 보고서』는 다른 분석 보고서들과는 달리 도자사 분석이 아닌 과학 데이터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 데이터를 도자사학자와 협력함으로써 함께 해석하려 시도한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두 분과 연구자의 협력이 이전의 백자 연구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둘째, 『경기도 보고서』는 분석을 담당한 보존과학자(이영은)가 1970년대에 고경신을 필두로 설립된 중앙대 보존과학 실험실에서 훈련 후 학위를 받고,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경기도 보고서』에 이르는 이영은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고경신에서 이영은으로 이어지는 보존과학 연구 스타일의 지속성을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러한 연구 스타일이 박물관 내 도자사학자(김영미)와의 만남으로 변화하는 양상까지 확인할 수 있다.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2절에서는 도자기를 둘러싼 두 분과의 소통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토대를 마련한다. 특히 도자기를 분석하는 보존과학 연구의 특징을 언어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이 언어가 갖고 있는 모순적인 성격, 즉 도자기에 대한 정성적인 미학적 언어에서 유래했으나 양화된 과학적 언어로 번역되면 될수록 그 미학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강조할 것이다. 3절에서는 『경기도 보고서』를 중심으로 두 분과의 설명 스타일이 공통 ‘언어’를 매개로 다시 접맥될 수 있는 지점과 이를 통해 가능해진 과학 데이터의 확장된 활용 방식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는 3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두 분과의 협력을 통해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새로운 도자사적 설명이 나올 수 있음을 보이고, 나아가 한 보존과학자의 연구 스타일 또한 초기와는 다른 스타일로 변화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논문을 마무리한다.

2. 보존과학 데이터의 일상어적 토대

2.1. 도자기 보존과학 데이터의 특징

물리화학적 분석을 중심에 둔 보존과학이 한국에서 연구된 초기의 형태는 197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공대 요업공학과(현재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임응극 교수는 비색, 즉 청자 색깔의 과학적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자기 분석을 시작했다(Lim and Lee, 1972). 이후의 보존과학자들은 유적지에서 수습된 도편에 분석화학, 재료공학 등에서 유래한 과학적 기법을 적용해 그 성분 및 특성을 규명하는 방법들을 발전시켰다. 과학학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과학 데이터는 과학기기를 통해 추상화되고 정량화되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와 멀어지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과학 데이터가 갖는 힘의 원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Latour, 1986). 이 글에서 주목하는 보존과학 데이터 역시 대체로 이런 특성을 공유한다. 보존과학자들은 분석기기를 통해 도자기의 정성적 특성 대부분을 수치, 그래프, 이미지(사진)와 같은 정량적 형태의 과학 데이터로 변환한다. 예컨대 보존과학에서 도자기의 특성은 Figure 1A와 같이 모두 화학성분과 수치로 환산되거나, Figure 1B와 같이 일정 수 이상 모인 유의미한 변수가 그룹화되거나 새로운 양적 패턴 정보를 산출한다.
한편, 도자사학자들은 도자기라는 ‘조형예술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체계화하는 목적’을 갖고 주로 문헌과 유물을 분석하여 도자기가 갖고 있는 여러 특징을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는 연구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출토 또는 발굴된 한 편의 도편을 비슷한 양식을 갖고 있는 다른 지역의 유물과 관련 문헌을 비교⋅대조해가며 해당 도편의 제작시기 및 발굴 가마터의 운영시기를 추정해간다(Kim, 2012; The Gyeonggi Museum, 2001). 이렇게 분석이 끝난 도편은 기존에 정리된 도자기의 기형 및 양식의 역사 속에 자리를 잡는다.
통상 보존과학자들의 분석은 도자사학자들이 1차적으로 분류한 도편과 그와 함께 제공된 정보를 토대로 수행되기 때문에 보존과학과 도자사 연구는 도편의 분류에서 상당한 일치를 보인다. 보존과학자들은 도자사학자들이 분류한 도편의 정보를 바탕으로 과학적 분석을 수행하고 그렇게 생산된 과학 데이터의 패턴을 기준으로 도편을 분류한다. 따라서 그 결과는 대체로 도자사학자들의 분류결과를 재확인한다. 이런 연유로 보존과학자들의 연구 목적은 출발점에서부터 도자사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 및 핵심 질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볼 수 있다. 이 연결점이 보존과학이 그 방법론의 기원이 되는 분석화학이나 재료공학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과학 데이터는 도자사학자의 분석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다음은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에 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에서 출토된 한 도편에 대한 도자사학자의 설명이다.
  • 이 시기에 왕실과 관련된 백자양식을 알 수 있는 예는 우산리 9호출 토 「見樣[견양]」銘[]白磁鉢片[백자발편]이다. 이 백자편의 안바닥 에는 「見樣」이라는 명문음각되어 있는데, 견양이란 중요한 儀禮 用品[의례용품]을 제작할 때 임금에게 미리 문양장식을 그려 바쳤던 견본이었다. 설백색태토담청색유는 매우 정선되었으며 제작수 법 또한 세련되어 이 「見樣[견양]」명 백자편이 왕실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산리 9호의 북동부, 남동부, 남서부 퇴적층에서뿐 아니라 가마 바닥에서도 갑발을 한층만 깔고 甲燔[갑번]한 상품백자와 중하 품의 조질백자가 함께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가마는 15세기 후반에 서 16세기 초반까지 관요였으나 왕실용과 기타 중앙관청용, 그리고 私用[사용]백자를 함께 번조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Kim, 1995, p223). (한글 별도표기 및 강조는 논자.)

위 도자사학자의 설명에서 우리는 보존과학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삼지 않는 것을 구별해볼 수 있다. 가령, ‘굽’, ‘명문’, ‘음각’, ‘왕실용’, ‘문양’ 등은 도자사 학자들에게 도자기의 역사적 해석을 가능하게끔 하는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지만 보존과학자들이 과학 데이터로 변환시키기 힘들거나 변환시키지 않은 것들이다. 반면, ‘설백색’, ‘태토’, ‘담청색유’, ‘제작수법’, ‘갑발’, ‘가마’ 등의 용어들은 보존과학자들이 과학기기를 통해 분석해낸 특성들과 관련된 것으로, 실제로 그들이 생산하는 과학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이러한 용어들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도자사학자들이 회백색, 설백색 등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는 백자의 색깔은 보존과학자의 분석기구에 의해 50, 70 등의 백색도 수치로 표현되고, 백색도와 품질의 관계는 착색산화물(Fe2O3, TiO2 등)의 함량으로 설명된다.
이 논문에서는 보존과학 데이터와 도자사 용어의 언어적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앞서 등장한 도자사의 전문 용어들을 다시 그 성격에 따라 ‘특수한 전문어’와 ‘보편적 전문어’로 세분해 이해를 돕고자 한다. 특수한 전문어와 보편적 전문어는 해당 언어가 일상적인 관찰언어와 맺는 관계에 따라 구별된다. 먼저 ‘특수한 전문어’는 도자사학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나 도자사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정확히 그 전문적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도자사학들의 전문언어로는 도자기에 새겨진 명문(사기장인 이름, 관청명, 지방명, 사용처 등급 표시), 도자사학자들이 고안하거나 역사문헌에서 발췌한 고유개념(관요, 도기소-자기소, 사옹방, 도제조 등), 도자기 제작 기법 및 특정 기형을 지칭하는 전문용어(굽받침 종류, 갑번, 상감, 인각, 귀얄 등) 등이 있다.
반면 ‘보편적 전문어’는 일상적 언어의 의미를 유지하고 있어서 도자사적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도자사 분과의 맥락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도자기의 종류(백자, 청자 등) 및 기형⋅무늬를 지칭하는 용어(물고기문, 화문, 대접, 접시, 향로, 사발 등), 도자기의 미학성을 표현하는 용어(간결, 소박, 단순미, 공간감, 화려한, 율동적, 곡선적 등), 그리고 도자기와 연관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용어(유교, 불교, 샤머니즘 등) 등이 대표적인 보편적 전문어이다. 물론 일반인들이 기형⋅무늬를 지칭하는 보편적 전문어를 도자사학자들처럼 구사하기 위해서는 도자사학적 훈련을 받거나 그 학문 분과의 암묵적 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록 보편적 전문어가 도자사학자들의 전문적 맥락에서 사용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일상어적 의미연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해당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 뜻을 직관적 수준에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보편적 전문어와 특수한 전문어가 가장 뚜렷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염두에 두고 보존과학 데이터의 특징을 분석해 볼 것이다.

2.2. 보존과학 데이터의 변화 및 확장

과학사회학자인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는 한 과학분과의 전문가가 외부의 비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조건에 관심을 가진 학자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소통 가능성은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전제로 한 ‘공유된 언어(shared language)’에서 찾을 수 있다(Collins, 2011). 콜린스는 이러한 공유된 언어를 갖춘 사용자에게 일정한 실천적 암묵지를 갖고 있는 전문가 집단과 소통할 수 있는 ‘상호작용 전문성(interactional expertise)’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보존과학에서 산출하는 과학 데이터의 해석 과정은 콜린스가 강조한 공유된 언어가 어떤 과정을 통해 구성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보존과학 데이터의 대부분은 일상 언어적 의미에 뿌리를 둔 보편적 전문어와 연관돼 있다. 특히 많은 과학 데이터들이 도자기의 가시적 특성 혹은 품질과 연관돼 설명되고 해석된다. ‘백색도’와 ‘경도’ 같은 물리과학적 성질이나 도자기 색깔에 영향을 주는 착색산화물 성분(철, 티타늄 등)과 유약 질감에 영향을 주는 성분(칼슘, 마그네슘 등) 함량 같은 화학적 조성이 중요한 변수로 고려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자사학자들이 사용하는 보편적 전문어가 모두 물리화학적 분석으로 획득할 수 있는 과학 데이터로 변환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도자기의 ‘굽’을 들 수 있다. 도자사학자들에게 도자기의 굽은 도자기의 용도와 품질, 그리고 도자기가 만들어진 시대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반면, 보존과학자들에게는 굽은 도자기의 모양이나 배치, 유약의 분포나 표면상태에서 대표성을 추출해 ‘평균’ 측정값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로 분석이 어려운 대상이다. 요컨대 보존과학에서 산출된 과학 데이터는 도자사학자들의 보편적 전문어 중 과학기구로 유의미하게 분석할 수 있는 용어들에 국한돼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보편적 전문어와 과학 데이터의 관계는 직접적일 수도 있고 간접적일 수도 있다. 어떤 과학 데이터는 도자기를 설명하는 관찰언어와 직접적으로 대응하나,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80년대 이래 중앙대의 고경신 실험실에서 수행한 연구를 크게 물리적 특성 분석(색도, 반사도, 경도 측정 등), 성분 분석(주성분 분석, 미량원소 분석, 희토류 원소 분석 등), 미세구조 분석으로 나누어 본다면, 이 중 도자기의 색이나 질감을 주로 측정하는 물리적 특성 분석과 도자기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찍은 미세 구조 사진 분석은 직접적으로 도자기를 설명하는 관찰언어와 연결된다. 반면 성분 분석의 결과는 관찰언어와 직접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화학적 조성과 도자기의 성질이 맺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해석이 필요하다.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가 도자기를 설명하는 도자사학자들의 보편적 전문어와 연결되어 있다 해도 도자사학자가 보존과학자가 분석한 과학 데이터를 이해하기 힘든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도자기의 원료에 함유된 마그네슘 성분을 도자기 표면의 상태와 어떤 식으로건 연관지어 해석해주지 않는 이상, 도자사학자들로서는 마그네슘 함량 분석 결과가 그들의 연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경향은 보존과학의 분과적 독립성이 강화될수록 심화된다. 이상의 논의를 Figure 2의 도표를 통해 정리해보자.
위의 도표는 가운데의 일상어(Ordinary Language: O·)를 중심으로 좌우 양측으로 도자기와 관련한 학술적 언어가 발전해가는 과정을 집약하고 있다. 즉, 일상어에서 왼편으로 나아가는 부분은 보존과학의 과학(데이터) 언어(Scientific Language)가 형성되는 과정을, 오른편으로 나아가는 부분은 도자사의 역사적 언어(Historical Language)가 형성되는 과정을 표상한다. 이렇게 볼 때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O·S)는 도자사의 보편적 전문어(O·H)와 함께 도자기를 기술하는 일상어(O·)를 그 시점에서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언어가 공유한 일상어적 뿌리는 개별 학문분과의 연구 양상이 독자화될수록, 즉 위의 도표에서 볼 때 각 학문 언어의 발달 과정이 좌우 양 말단으로 나아갈수록 점차 암시화되어 논의의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는다. 그 결과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는 과학적 전문어((O)·S)로, 도자사의 언어는 도자사적 전문어((O)·H)로 각각 특수화되어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로 고립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백색도’를 예시로 다시 살펴보자. 백자의 품질을 평가하는 결정적 기준인 백색은 도자사학자, 보존과학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그러나 보존과학자들에게 백색의 정도는 수치로 변환된 백색도 측정을 통해 표상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변수들 역시 백색도 측정과 연관된 것들에 국한된다. 도자기를 설명하는 보편적 전문어이기도 한 태토, 가마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보존과학의 맥락에서 ‘태토’는 ‘철 함량’ 분석으로, ‘백색도’는 ‘철 함량’과 ‘산화⋅환원 정도’, ‘가마(번조분위기)’는 ‘산화⋅환원 정도’등으로 다시 변환되고, 각 용어는 관련 분석법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특수한 의미를 띠게 된다. 비록 보존과학의 분석기법이 세분화되고 정교해짐에 따라 백색도와 관련한 더욱 심도 깊은 과학 데이터들이 추가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러한 산출 데이터들의 복합적 패턴이 초기의 도자사적 맥락에서 의미하던 백색과 맺던 직관적 관련성은 점차 사라진 것이다. 가령 초기에 백색도를 물리적 기구로 측정한 수치로 나타낸 데이터(예를 들어 백색도가 높을수록 100에 가깝게 나타나는 수치)나, 백색도를 도자기 원료의 철 함량 정도로 표시한 데이터는 백색도와 일대일로 직접 대응하는, 상대적으로 그 의미가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과학 데이터였다. 그러나 백색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세분화하여 다변수적 분석(예를 들어 산화철 정량분석과 가마 내 산화환원 정도 분석 등)을 수행하게 되면 각각의 변수는 백색도와 ‘간접적’으로만 연결되고, 개별 변수가 백색도와 맺는 관계는 일의적으로 확정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산화철 정량분석 결과를 통해 보편적 전문어로서의 백색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 함량 분석과 같은 매개의 단계가 한 번은 더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보존과학이 도자기를 더욱 심층적으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과학기기를 통한 측정 데이터들이 역사적⋅미학적 판단과는 독립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용법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이 보존과학의 언어에서 백색도와 같은 보편적 전문어의 흔적이 사라졌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보존과학이 도자기를 기술하는 언어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보존과학의 데이터와 보편적 전문어는 둘을 연결하는 적절한 해석적 고리를 통해 다시 유의미한 만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음 절에서 분석할 경기도박물관의 한 연구 프로젝트는 두 분과의 학자들이 보존과학과 도자사가 직간접적으로 공유한 언어를 복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교역지대’를 형성해나간 사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Galison, 1997).6)

3. 도자사 언어로 재확장되는 보존과학의 언어: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를 중심으로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이하 『경기도 보고서』)는 보존과학의 맥락에 한정된 과학 데이터가 본래의 공통 ‘언어’를 매개로 도자사 연구의 설명과 접맥되어 그 용법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산출된 연구 결과이다. 이 과정은 Figure 2에서 제일 왼편에 있던 과학 언어가 점차 오른편으로 다시 이동하며 애초의 의미 연관을 회복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학 데이터의 성격 변화는 중앙대 유물과학 실험실에서 형성된 보존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습득한 이영은이 경기도박물관에서 함께 근무하게 된 도자사학자 김영미와 만나 협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3.1.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 보존과학과 도자사학의 ‘실질적’ 학제 간 연구

경기도 광주 백자에 대한 기존의 도자사 연구는 분청과 백자와의 관계, 관요백자의 용도와 변천, 각 종류별 자기의 제작 시기 및 양식 발전, 관요 작업장 등에 집중되어 있다(Kim, 2001; The Gyeonggi Museum, 2001; Kang, 2003; Jeon, 2004; Cho, 2009).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가마 구조와 출토 유물의 형식적 변화를 분석하고 나아가 도자기가 실제로 사용된 소비지에서 발견한 유물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소비지와 생산지의 관계나 당대의 소비성향 등과 같은 내용까지 다루는 학자들도 있다(Jang and Kim, 2007; Jung, 2012; Kim, 2013). 그러나 도자기의 원료나 제작 과정을 밝히는 것과 관련된 문제들은 문헌과 유물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기에 많은 부분이 여전히 미결로 남아 있고, 편년을 확실하게 입증해 줄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가마터의 경우 정확한 운용 시기를 확정할 수 없기에 다른 가마터와 비교함으로써 대략적인 선후 관계만 설정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절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할 『경기도 보고서』는 바로 이런 문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기한 사례였다. 이 특수한 사례의 일반적 의의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본고는 앞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과학 데이터의 성격이 도자사적으로 유의미한 정보를 획득해나가는 양상에 주목할 것이다. 2008년에 발행된 『경기도 보고서』는 경기도박물관에서 “도자기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도자사 연구의 학제간 연구를 통하여 관요도자의 제작기술을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목적”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이다(The Gyeonggi Museum, 2008).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시대 왕실의 도자기 제작을 전담하던 관요(官窯)가 있던 곳으로, 현재까지 300여 개가 넘는 가마터가 발견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이다. 일찍이 1997년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 광주 지역 가마터에 대한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이 당시 수습된 수백 편의 도편 정보와 가마터의 내용들은 따로 보고서로 정리되어 출판된 바 있다(National Museum of Korea and the Gyeonggi Museum, 2000). 『경기도 보고서』는 이 당시 수습된 수백 편의 도편을 과학기기를 통해 분석하고 그 분석 데이터를 보존과학자와 역사학자가 함께 해석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경기도 보고서』가 이전 보고서들과 비교해 가장 독특한 점은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이 보고서의 서론에서도 밝히고 있듯 “과학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도자사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The Gyeonggi Museum, 2008, p10-13). 여전히 보존과학자들의 분석 결과가 보고서 말미에 1∼2편 수록되는 식으로 구성된 기존의 보고서들과 달리, 『경기도 보고서』는 양적으로만 보아도 과학 데이터가 보고서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고, 도자사적 해석 역시 과학 데이터를 면밀하게 검토한 바탕에서 제시되었다. 보고서의 본문을 살펴보면 조선시대를 총 네 부분으로 나누고 각 시대별로 2∼3페이지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 후, 과학 데이터를 본론의 중심에 배치하고 거기에 도자사적 해석을 추가한 형식으로 구성해 놓았다. 요컨대 기존 보고서들이 도자사 연구와 보존과학 연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경기도 보고서』는 두 분야의 유기적이고 실질적인 결합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합의 구체적 양상은 어떠했을까?

3.2. 과학자의 결론, 역사학자의 질문: 보존과학 언어와 도자사 언어의 접맥

『경기도 보고서』는 과학 데이터의 의의를 기존의 연구에서라면 이미 결론으로 제시됐을 법한 내용에 한정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과학적 데이터를 도자사학자들이 고려할 법한 추가적인 해석과 연결하며 보존과학 데이터의 용법을 도자사의 설명틀로 확장하려 했다. 이런 추가적인 해석은 주로 어떤 기준에 따라 일정하게 정리되지 않는 데이터들에서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는 특정 기준에 따라 그래프로 그려지고, 통계적으로 처리된 후 일정한 패턴으로 묶인 형태로 정리된다. 그러나 모든 과학 데이터들이 정상 그래프 형태나 몇 가지 범주로 패턴화되지는 않는다. 특정 형태나 범주로 패턴화되지 않는 이러한 과학 데이터들은 기존의 보존과학 논문에서는 보통 열외로 처리되거나, 결론에서 간략히 언급될 뿐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보존과학자 고경신 역시 일정 기준에 따라 정리되지 않는 흩뿌려진 데이터들은 논문의 결론에서 간단히 언급하기는 해도 중요하게 해석해야 할 데이터들로 주목하지는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회고한 바 있다.7) 그러나 다음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경기도 보고서』의 연구자들은 정상 패턴에서 벗어난 열외 데이터들에 도자사적 해석을 추가하여 보존과학 데이터를 도자사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로 전환시켰고, 나아가 이 결과를 다시 도자사학계에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한 중요한 증거로 재해석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정상 그래프 패턴에서 벗어나는 수치들이 자주 나타나는 사례 중 하나로 보고서의 연구자들은 도자기의 가시적 색상과 착색산화물 함량의 상관관계 그래프에 주목했다. 백자의 백색도는 대표적인 착색산화물인 철 함량이 많을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백색도와 철 함량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반비례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구도에서 볼 때 Figure 3 그래프에 표시된 B 그룹의 데이터들은 반비례 그래프에서 벗어나 산발적으로 퍼져있어 기존 연구에서는 그 의미가 잘 해석되지 않는 예외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보존과학자들이 반비례 영역에서 벗어나는 데이터들을 그저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 해석 방안으로 흔히 번조 분위기에 주목했다. 이 안에 따르면, 가마내 분위기가 산화 분위기라면 산소와 더 많이 결합된 Fe2O3, 즉 Fe3+의 비율이 높아지고, 반대로 환원 분위기라면 산소를 빼앗겨 FeO의 산화 상태, 즉 Fe2+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색도가 높은 백자를 굽기 위해서는 가마 상태를 환원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불 조절이 필요하다. 『경기도 보고서』의 연구자 중 하나인 이영은 역시 이러한 분석을 그대로 따르며 우산리 지역에서 출토된 도자기의 철 함량과 백색도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 결과 철 함량에 비해 백색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도편들은 모두 산화 분위기에서 번조된 것으로 밝혀졌고, 철 함량에 비해 백색도가 더 높은 도편들은 환원분위기에서 번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기도 보고서』의 저자들은 색깔과 번조 분위기의 상관성에 관한 기존의 설명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들은 “정상적인 그래프 패턴 안에서 벗어나는 수치들은 왜 생기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처럼 패턴화되지 않는 수치들의 원인을 추정함으로써 도편이 제작된 당시의 기술 수준을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보고서의 연구자들은 그래프에서 벗어나는 수치들이 조선 전기 우산리 4호와 5호의 도편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 도편들이 제작된 시기의 도공들의 번조 기술이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The Gyeonggi Museum, 2008, p41-50).
여기서 본고가 강조하려는 사실은 이러한 결론이 과학 데이터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실제 유물 출토 현황에 대한 도자사적 지식이 합쳐짐으로써 도출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우산리 지역의 가마터는 15세기 후반이나 16세기 초중반에 이르면 양질의 도자기가 산출되지만, 조선 개국 초기인 15세기 전반에는 분청사기와 조질백자가 주로 산출되는 곳이었다(Haegang Ceramics Museum, 1995). 이를 입증하듯 우산리 지역의 가마가 운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도편들의 분석 데이터는 정상 그래프 패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더불어 유약 데이터의 함량 변화가 크고 융제의 함량 역시 일정하지 않아 일정한 그래프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특징을 보였다.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은 문헌 및 출토 유물 현황 등을 근거로 이 두 가지 지식을 연결했고, 이로부터 일관성 없이 들쑥날쑥한 도자기 분석 데이터를 상대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당시의 제작 기술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The Gyeonggi Museum, 2008, p52-53).
『경기도 보고서』의 우산리 분석 사례에서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과학 데이터를 토대로 확장된 해석이 다시 도자사학자의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우산리 지역은 비록 『세종실록』 「지리지」에 “소산의 하품(下品)”의 산출지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양질의 도자기가 함께 출토되어 도자사학계에서 문헌 기록과 유물 품질의 상관 관계가 논란이 된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경기도 보고서』의 해석에 따르면 좋은 품질의 도편이 출토되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이 지역을 상품(上品)의 도자기를 생산한 지역으로 볼 수는 없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를 연구자들은 역시 안정화되지 않은 당시 도공들의 기술에서 찾았다. 즉, 이 지역에서 양질의 백자가 간혹 출토되었다 해도 반비례 그래프 패턴에서 벗어나는 도편이 많다는 사실은 초기 우산리의 도공들이 가마의 번조 분위기를 적절히 제어할 수 없었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량의 출토된 양질 백자는 우연의 소산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지역에서 출토된 백자들은 문헌 기록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대체로 ‘하품’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한편 도자사학자 김영미는 우산리 지역 내 4호 가마터의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일관 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는 점에도 주목했다. 원래 우산리 4호 가마터는 절대 편년 유물이 없어 그 운용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곳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김영미는 일부 도편을 근거로 4호 가마터를 왕실 도자가 만들어진 기점이자 9호 최상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초기 모델의 제작지로 추측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과학 데이터들은 자신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증거로 해석될 수 있었다. 4호 가마터의 일관되지 않은 데이터는 도공의 기술이 안정되지 않은 초기의 도자 제작 과정을 반영한다는 것이었다(The Gyeonggi Museum, 2008, p51-53).8) 이 사례는 정상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관적이지 않은 과학 데이터가 도자사적으로 유의미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내는데 과정에도 유용하게 확장 및 적용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요컨대 우산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낸 방식은 과학 데이터의 해석이 보존과학의 고립된 영역을 넘어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즉, 도자사학자의 문제의식이나 인식이 보존과학자가 도출한 분석적 결론과 접목되면서 그 전과는 다른 생산적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잘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경기도 보고서』에서 드러나는 과학 데이터의 성격 변화 및 해석적 확장을 서로 다른 분과의 두 연구자가 상호작용한 결과물로 본다면 이러한 상호작용의 구체적인 양상을 규정한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 절에서는 이 절의 논의를 2절에서 검토한 일상어에 토대를 둔 도자사 언어와 과학 데이터와 연결해 이 질문에 답해 볼 것이다.

4. 과학 데이터의 서사성

4.1. 공유 언어의 회복 및 매개를 통한 협업

앞 절에서 논의했듯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도자사의 보편적 전문어가 물리화학적 분석기법을 통해 보존과학의 분석 언어로 변환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도자사의 언어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언어적 제약은 과학 데이터를 도자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드는 연결 고리로도 기능할 수 있었다. 경기도박물관의 연구자들은 이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 전의 보존과학 연구에서는 거론되지 않던 도공의 실행을 복원하는 등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었다. 그들은 도편의 과학 데이터를 도공들의 기술 수준이나 시대 상황과 같은 사회역사적 현실과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보존과학과 도자사학이 각자 독자적으로 구축해오던 설명 스타일과는 다른 설명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설명 스타일의 형성 조건은 무엇보다 보존과학과 도자사학이 공유한 언어, 즉 도자기를 기술하는 일상어의 존재를 상기하고 그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도공들의 기술 수준이나 이를 개선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특히 도자기의 품질이 좋지 않다고 평가되거나 양식이나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기에 더 잘 드러났다. 우선,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은 임진왜란 이후 운용된 가마터 중에서 특히 상림리 가마터(1631∼1640년 운용 추정)에 주목하였다. 상림리 가마터의 백자 도편들은 임란 직후 급격하게 떨어진 백색도 수치가 임란 이전의 평균치인 70∼80선을 회복하며 점차 백자의 품질이 나아지고 있던 시기에 산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이 상림리 지역을 주목한 것은 이 지역에서 발견된 일부 도편의 주성분 분석 그래프가 매우 특이한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태토와 유약의 소다 성분 함량을 비교한 아래의 그래프를 살펴보자. 이 그래프에 따르면 조선 중기 상림리 11호 가마터의 일부 양질 도편에서 독특하게 태토와 유약의 소다 성분의 증감 패턴이 서로 반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Figure 4의 원 표시).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은 특이한 패턴을 보이는 이런 데이터를 측정 상의 문제로 산출된 무의미한 데이터로 보거나 대표성이 없는 예외적 데이터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독특한 데이터가 “이 시기 태토와 유약의 원료 선택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제작기술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추론한 뒤 다른 성분 분석을 통해 이 추론을 뒷받침하려 하였다. 가령 그들은 비슷한 하품의 ‘유약’이라 하더라도 성분을 분석해보면 상이한 패턴이 드러난다는 점, 그런 패턴들 중 유독 독특한 형태가 이 시기에 국한돼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러한 차이의 이유를 도공들의 새로운 시도라는 사회역사적 현실에서 찾았다. 도자사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유약의 품질이라는 보편적 전문어를 성분 분석 패턴이라는 비가시적 영역의 과학 데이터로 더 세분함으로써 유약의 차이를 만들어낸 도자사적 조건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 것이다.
상림리에 대한 재해석은 나아가 조선 시대 전체에 대한 또 다른 통시적 해석을 이끌어냈다. 도자사학자들은 그 동안 조선 중기의 전성기인 금사리 가마터에만 주목하며 금사리까지 이어지는 도정의 다른 가마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의 해석을 따라 이 시기 상림리 지역을 조선 중기 전성기의 금사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술적 전환이 일어난 때와 장소로 본다면, 상림리를 포함한 몇몇 지역을 도자사적으로 재해석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또한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은 임란 직후, 상림리 직전 시기에 운용된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편들에 대해 기존 도자사학자들과는 다른 해석을 제시하였다. 임란 직후에 만들어진 백자의 품질이 임란 이전 시기에 비해 급격히 떨어졌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로서, 그간 도자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임란 이후 국토가 황폐해지고, 이탈한 도공들이 증가한 데서 찾았다. 실제로 임란 직후 운용된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편들은 조선 전 시기를 통틀어 태토의 착색산화물 함량이 가장 많아 백색도가 높은 도자기를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은 철 함량과 백색도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해석해 당시 도공들이 원료의 한계를 기술력으로 점차 극복해나가려 했음을 읽어 냈다. 또한 연구자들은 임란 직후 운용된 탄벌동 가마터에서 발견된 도편들 중양질로 분류된 도편들의 백색도가 임란 직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당시 도공들의 기술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The Gyeonggi Museum, 2008, p162-165). 요컨대, 경기도박물관 연구자들은 임란 이후 원료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도편들이 평균의 백색도를 유지했다는 점, 더욱이 착색산화물 함량이 높고 다양한 산지의 원료가 사용됐음에도 백색도가 75∼82% 정도로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며 점차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당시 도공들의 기술 수준이 상당히 우수했음을 추론한 것이다. 이러한 분석과 추론은 임란 이후 제작된 도편들이 황폐해진 당시 상황을 단순히 반영하고 있다고 본 기존의 해석을 벗어나, 당시 도공들이 양질과 조질의 원료를 구별하고 다양한 유약 제작 기법을 실험하는 등 분명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높은 기술 수준을 유지하며 좋은 도자기를 만들고자 노력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볼 때 『경기도 보고서』의 새로운 해석들은 보존 과학 과학 데이터가 도자사적 관점 및 해석과 접목되어 새롭게 활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학 데이터는 도자기의 미학성 및 도공의 기술력을 표현하는 일상적 언어와 다시 연결됨으로써 보존과학자들과 도자사학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할 수 있었다.

4.2. 현재 진행형인 상호작용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경기도 보고서』 이후 이어진 보존과학자 이영은의 연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8년에 『경기도 보고서』를 출판한 이후 이영은이 발표한 논문에서 눈에 띄게 보이는 변화는 일단 분량 상으로 과학 분석 방법론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간략하게 줄고 과학 데이터를 도자사적으로 해석한 내용이 증가한 점이다. 예컨대 용인서리 지역 발굴조사 보고서를 보자. 이 연구에서 그는 발굴된 도편을 분석하여 일부 도편에서 태토와 유약 사이에 얇은 백색의 중간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영은은 이러한 현상적 결론에 머물지 않고, 도편의 미세구조에서 발견된 이러한 백색의 중간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백자인지 청자인지 모를 도편들에 있는 중간층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더 깊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영은은 백색의 중간층이 번조 과정에서 유약의 성분 중 일부가 스며들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제작 과정에서 백색도를 높이기 위해 당시 도공들이 의도적으로 유약을 칠한 결과임을 밝힐 수 있었고, 나아가 이를 “조선시대 분청사기 분장의 효과를 갖는 가장 이른 시기의 예”라고 해석하기에 이르렀다(Kim and Lee, 2014, p347). 이영은의 최근 연구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과학 데이터를 가능한 한 도자사의 보편적 전문어를 활용해 해석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 비색 청자의 특징인 ‘유약의 투명성’을 규명한 연구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Lee, 2013).
  • 기포가 많고 완전히 자화(磁化)되어 투명한 고려청자의 유약은 칼슘 함량이 높아 비교적 저온에서도 자화가 잘 될 수 있는 성분상의 특징과 번조 과정 중 유약이 액체 상태로 유지되는 시간이 매우 짧으며, 빠르게 냉각되는 가마의 특성을 활용한 적절한 번조기술의 운용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Lee, 2013, p234)

여기서 이영은은 고려청자의 투명한 유약을 ‘기포가 많고 완전히 자화(磁化)되어 투명한’ 상태로 정의하고 가마의 특성과 도공의 번조 기술 등을 함께 언급하며 도자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분명히 열어두고 있다. 더불어 이전의 글에 비해 도자사의 보편적 전문어가 상대적으로 증가한 점 역시 뚜렷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이영은의 최근 연구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또 다른 변화는 과학 분석의 목적을 질문 형태로 먼저 제시하고 과학 데이터를 그 질문에 대답하는 설명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비색 청자의 중요한 특성을 ‘투명한 유약’으로 규정하고 그처럼 투명한 유약이 나올 수 있는 원인을 도공의 ‘숙련된’ 기술에서 찾으려는 아래의 시도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 단단하고 치밀한 태토는 정선된 수비 과정과 적절한 자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화과정을 통해서 태토 내부에 있는 장석과 점토가 내부의 기공들을 메우면서 전체적으로 자기의 부피는 줄어들게 되고 단단하고 치밀한 태토가 된다. 번조 속도를 적절하게 올리고, 최고 온도에서 머무는 시간을 조절하여 태토와 유약이 모두 완전히 자화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작업으로 원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Lee, 2013, p234-235)

이처럼 글의 서술 형식이 변화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연구논문을 읽는 독자가 보존과학자에서 도자사학자로 바뀌었다는 점, 『경기도 보고서』를 통해 도자사적으로 중요한 질문들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게 됐다는 점, 학교 실험실에서 박물관으로 작업 공간이 이동했다는 점 등이 그 대표적 이유들이었다. 지금껏 이 논문이 대답하려 한 질문은 이러한 여건의 변화가 구체적 연구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조건은 오늘 독자적 연구 체제를 확보한 보존과학과 도자사학이라는 두 분야가 그 출발점에서 공유하고 있던 일상적 관찰 언어였다.
물론 과학 데이터가 도자사의 언어로 그 용법이 확장돼 얻어진 여러 해석이 도자사학자들에 의해 얼마나 가치있고 의미 있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아직 확답할 수 없다. 이 논문의 주안점은 과학 데이터가 도자사적으로 새로이 해석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다는 점, 이러한 공간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도자사학자와 보존과학자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 이러한 소통의 조건이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가 도자사의 보편적 전문어와 그 뿌리에서 공유하고 있는 일상적 관찰 언어라는 점이었다.

5. 결 론

이 논문은 과학과 역사학 분과의 연구자들이 같은 도자기를 연구 대상으로 공유함에도 서로의 연구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언어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두 분과가 소통할 수 있는 조건, 혹은 매개 지점을 드러내려 했다. 보존과학자들이 생산하는 과학 데이터는 그 시점에서부터 도자기를 설명하고 기술하는 일상적 언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보존과학의 분석기법이 세분화되고 정교해짐에 따라 두 분야의 언어는 독자적 설명 스타일 내로 점차 고립돼 갔다. 그러나 두 언어가 뿌리에서 공유한 일상적 언어란 토대는 보존과학의 과학 데이터와 도자사학의 전문어가 다시 접맥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재접맥의 좋은 사례를 이 논문은 『경기도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서 드러난 과학 데이터의 새로운 성격은 과학 데이터에 역사적⋅미학적 해석이 결합됨으로써 성립될 수 있었다. 특히 연구자들은 패턴화된 그래프에서 벗어나는 수치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과학 데이터에서 새로운 도자사적 해석을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간 특정한 패턴이나 범주에 포섭되지 않아 열외로 처리된 과학 데이터에 주목하고 과학 데이터들의 차이를 도자사적 질문으로 변환한 것, 이로부터 그간 도자사학에서 합의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자사학의 통설과 다른 해석을 지지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이끌어낸 것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물론 이 연구는 『경기도 보고서』와 해당 보고서의 연구자가 수행한 일부 다른 연구에 한정하여 분석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연구를 시작으로 더 많은 사례 연구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 이 사례에서 본 연구가 주목한 지점은 보존과학과 도자사학의 설명 스타일이 갖고 있는 일반적 특징, 특히 두 설명 스타일이 사용하는 언어상의 공유점과 차이점이었다. 두 분야의 언어적 차이는 현재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두 분야의 상대적 자립과 고립을 드러내주는 징표이자 그 현상을 설명해주는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드러낸 두 언어의 공유점에 주목한다면 향후 보존과학과 도자사학이 서로 소통하며 도자기에 대한 더 풍부한 과학적 역사적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 사

본 논문은 연구자의 석사 학위논문, "깨진 도편에서 도공들의 서사로" (서울대학교, 2014)를 3절의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본 논문을 수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익명의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Notes

외국에서는 일찍이 1930-40년대부터 도자기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행해졌다. 중국 ‘상해요업연구소(Shanghai Institute of Ceramics)’는 이 분야의 선구적 기관으로 1950년대부터 경덕진, 용천 등의 주요 자기 생산지역에서 나온 도자기를 중심으로 분석 연구를 수행하였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는 ‘고고학 및 예술사 연구소(Research Laboratory for Archaeology and the History of Art)’가 1955년에 만들어졌고 이 곳에서 출판하는 학술지인 Archaeometry에 보존과학 관련 논문이 수록되기 시작했다.

Notes

한국의 근대 학문이 대개 그렇듯 한국의 도자사 연구도 엄격히 따지자면 일본 학자들에 의해 가마터가 발굴되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독자적인’ 도자사 연구가 시작된 해방 이후 1960년대를 도자사 연구의 시발점으로 상정하였다.

Notes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문화재 보존가’가 수행하는 일에 문화재 조사, 분석, 해석, 기록, 보존처리, 복원, 복제 등의 영역을 모두 포함시켰다.

Notes

이 논문에서 주로 분석하는 연구자들이 있던 중앙대 역시 1996년에 과학학학과(협동)를 개설(현 문화재학과 협동과정)했다. 중앙대 이외에도 용인대가 1997년에 문화재학과내에 문화재보존학 과정과 고고미술사학과 학부 과정을 만들었고 이후 공주대 자연과학대학 문화재보존과학과(1998년), 경주대 문화재학부 내 문화재보존학 전공(1999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2000년) 등, 대학 내 보존과학 전문학과가 연이어 설치되었다.

Notes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는 당시 관장(김재열)을 포함하여 분석팀(이영은, 김현정, 고민정, 한혜연, 곽은경), 도자사팀(김영미, 박지영, 최명지)의 협업으로 나온 결과물이다(The Gyeonggi Museum, 2008, p13). 그 중, 이 논문에서는 보존과학과 도자사 두 분과가 융합할 수 있는 조건 혹은 매개 지점을 드러내고자 특정 과학자를 선택한 후, 그의 연구가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 보고서』 작업을 전후로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논자는 사전 인터뷰를 통해 각 팀을 이끌었던 연구자들을 확인했고, 이에 근거하여 본고에서 지칭하는 이영은은 분석팀을, 김영미는 도자 사팀을 각각 대표하는 것으로 한다.

Notes

‘교역지대(Trading Zone)’는 과학사학자 갤리슨(Peter Galison)이 고안한 개념이다. 갤리슨은 『이미지와 논리(Image and Logic)』에서 이론, 실험, 기구 전통으로 분리되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물리학 내 하위 분과 간 소통에 주목하며 ‘교역지대’를 제안하였다. 그에 따르면 물리학의 세 하위 분과에 있는 과학자들은 ‘서로 끼워진(intercalated)’ 구조의 ‘국지적 협력(local coordination)’을 하며 소통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소통은 ‘교역지대’ 라는 공간 내에서 가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이 효율적인 교역을 위해 교역지대에서 사용하는 소통의 언어, 혼성어를 만든다는 점이다. 가령, 이론 물리학자는 이론적 복잡성을 제거하고 실험물리학자는 실험과정 및 기구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물리학의 특정 혼성어는 해당 하부 전통의 본래 언어는 아닐 수 있지만 양전통에 모두 연결돼 있어 다른 분과 간 과학자들의 상호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Notes

2014. 07. 23. 고경신 인터뷰

Notes

2014. 03. 14. 김영미⋅이영은 인터뷰

Figure 1A.
Part of the Soil analysis in the table of ingredients for the composition of white porcelain in Joseon Dynasty (Koh et al., 2011, p64.)
JCS-2020-36-6-13f1a.jpg
Figure 1B.
Seger graph of body compositions (SiO2 as a function of RxOy). The * indicates Chosŏn celadon (Koh et al., 2011, p67)
JCS-2020-36-6-13f1b.jpg
Figure 2.
Shared ordinary language that intermediate scientific language and historical language.
JCS-2020-36-6-13f2.jpg
Figure 3.
Fe2O3 and whiteness graphs of white shard from Usan-ri (The Gyeonggi Museum, 2008, p44).
JCS-2020-36-6-13f3.jpg
Figure 4.
Comparative graph of Na2O in soil and glaze (the middle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Gyeonggi Museum, 2008, p210)).
JCS-2020-36-6-13f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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